등록 : 2019.10.10 20:07
수정 : 2019.10.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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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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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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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한달을 맞은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은 위원장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정책이 집행돼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도록 하겠다. 정책의 집행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이 정책의 집행 속도를 강조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정책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은 위원장이 이날 간담회에서 밝힌 견해를 들어보건대 현재 우리 금융시장이 직면한 상황에 견줘 긴장감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선 그는 사모펀드의 규제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이른바 ‘조국 사모펀드’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진 뒤인 지난 8월29일 인사청문회 때 “사모펀드 규제는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날 간담회에서 그는 “기관투자가도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입장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명의 투자자들이 투자 손실로 몇달째 아우성치고 있는데 금융당국 수장의 태도 변화는 너무나 느린 수준이다.
은 위원장은 디엘에프 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감독 실패 책임을 묻는 말에는 다소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디엘에프 원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물론 원인을 알아야 대책이 나오니까 원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네 책임이다, 내 책임이다’라는 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넘어갔다. 그러나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원인 진단을 하고 넘어가면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올 수 없다. 특히, 그는 사모펀드 판매 같은 은행의 비이자수익 추구 행위에 대해 은행 수익원의 다양화 측면을 거론하며 “비이자수익에 대해 너무 세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달말께 나올 예정인 사모펀드 대책이 ‘빈 수레’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은 위원장은 ‘경기가 침체되면 파생결합펀드,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리츠 등에서 연쇄적으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데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비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주가 하락했다고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투자자산의 가격 변동에 대해 그런 대비책은 마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이라며 “다만 이것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것이냐 하는 부분은 예의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모펀드 육성 과정에서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느슨한 감독 탓에 대형 금융사고가 빚어진 현재 상황에서 금융당국 최고 책임자가 언급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은 위원장은 재정경제원 시절인 1996~98년 금융정책 분야를 담당한 뒤엔 주로 국제금융 분야에서 일했으며, 최근 2~3년 동안은 한국투자공사(KIC) 사장과 한국수출입은행장을 맡았다. 금융당국은 금융안정과 금융산업 육성, 소비자 보호라는 세 가지 축을 균형감 있게 다뤄야 하는데 은 위원장은 금융산업 육성에 지나치게 쏠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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