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8 19:02
수정 : 2019.11.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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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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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분 1.5% 내달 자국증시 상장
희망 공모가 기준 시총 1.7조달러
애플·마이크로소프트 훌쩍 넘어서
석유 의존형→금융·제조업 전환 계획
‘비전 2030’ 재원 절실 기업공개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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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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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왕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사막에서 나와 마침내 시장에 공개된다.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탈석유’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사우디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아람코는 사우디 증시(타다울)에서 전체 지분(2천억주)의 1.5%에 해당하는 30억주를 상장할 계획이라고 지난 17일 밝혔다. 아람코는 사우디 정부가 100% 지분을 확보한 국영기업이다. 이날 발표된 희망 공모가 범위(8~8.52달러)를 기준으로 아람코의 시가총액을 계산하면 1조6000억달러(1863조원)~1조7040억달러(1984조원)가 나온다. 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목표로 삼았던 2조달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나스닥 시장에서 1조1천억달러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1~2위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총을 훌쩍 뛰어넘어 세계증시의 제왕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확정 공모가는 기관투자가들의 수요예측을 반영해 다음달 5일 발표할 예정이다. 상장시점은 다음달 중순으로 예상된다. 내년 하반기 이후 뉴욕 등 국외 증시에 추가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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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는 세계 산유량의 10%(하루 1천만배럴)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다. 올해 3분기까지(1∼9월) 매출 2440억달러와 순이익 680억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애플의 실적과 견주면 매출은 1.4배, 순이익은 1.9배를 넘는다. 지난해 순이익은 1111억달러로 미국의 대표 기업인 애플,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엑손모빌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절대왕정국가의 유례없는 초대형 기업공개에 금융시장은 고민에 빠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적정 시총을 1조2천억~2조3천억달러로 이례적으로 넓게 잡는 등 신중한 태도다. <워싱턴포스트>는 저유가 탓에 아람코의 가치가 이전보다 조금 줄어든 1조6천억~1조8천억달러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유전 채굴비용이 경쟁사 대비 30%에 불과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받는다. 반면 국영기업인 탓에 정부의 경영 개입은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아람코는 국가재정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로열티와 고율의 법인세(50%)를 납부한다.
아람코의 상장 후 주가 향방에 영향을 줄 핵심 요인은 당연히 국제유가 흐름이다. 일각에서는 아람코의 상장 자체를 사우디가 원유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아람코는 이번 투자설명서에서 원유 수요의 고점 시기가 2020년대 후반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문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 전기 자동차와 차량공유 확산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뉴욕타임스>는 내년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 원유 공급이 ‘홍수’처럼 쏟아져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아람코의 상장을 서두른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9월 사우디 석유시설이 피폭됐는데도 유가가 ‘반짝’ 오른 뒤 제자리로 돌아간 것도 그만큼 공급과잉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미국이 내년에 원유 수출을 본격적으로 늘린다는 점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추가 감산도 유가를 떠받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의 상장에 온 힘을 쏟는 이유는 경제개혁 정책인 ‘비전 2030’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2016년 발표된 이 정책의 핵심은 석유 의존형 산업구조를 제조업과 금융, 문화와 관광산업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사우디 국부펀드(PIF)로 이관해 세계최대 스마트시티를 건설할 계획도 갖고 있다. 김효진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석유로 번 돈으로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를 만든 노르웨이의 모델을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르웨이는 2001년 국영석유회사(스타토일)를 상장해 조달한 자금의 절반을 국부펀드(GPFG)에 집어넣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로 국내 기업들과도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4월 현대오일뱅크의 지분(17%)을 아람코에 매각해 1조4000억원의 자금을 다음달 받는다. 지난 6월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아람코는 현대차와 수소차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아람코의 수소차에 대한 관심은 휘발유 수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추희엽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람코가 국가개혁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행하면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 등 국내 플랜트 업계에도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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