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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2 21:51 수정 : 2019.12.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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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3분의1 할당’ 법안 내자
상임위·법사위원들 “기업 부담”
‘여성 최소 1명으로’ 축소해놓고
그마저 “강행 어렵다” 더 후퇴

국내 여성 이사 비율 3.1% 불과
노르웨이선 남녀 각각 40% 규정
위반땐 상장폐지까지 될 수 있어
“성별 다양성이 위험관리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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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기준 국내 10대 기업 이사회에 속한 여성 이사 수다. 그마저 ‘첫번째 1’(삼성전자)은 2016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애플 등 경쟁사보다 이사회 성별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주주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여성 이사 비중 20.6%)와 비교하기도 민망한 상황 속에서 자산 2조원이 넘는 대기업이 이사회를 구성할 때 여성이 1명이라도 포함되도록 권고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상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여성 이사를 최소 3분의 1 할당하도록 의무화하는 법 초안보다 대폭 후퇴했지만, 법이 통과될 경우 남성 일색인 기업 이사회 풍토에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2일 국회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준수 여부를 자율공시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었지만,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향후 법안 처리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안은 지난해 10월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는데, 기업 부담 우려 등의 이유로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와 법사위를 거치며 대폭 손질됐다. 개정안 초안 조문은 ‘특정 성의 이사가 이사회 정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였다. 이사진의 3분의 1은 의무적으로 여성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사유를 공시하는 사업보고서에 반드시 쓰도록 했다.

지난달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 심사에서 위원들은 여성의 유리천장 해소 등 법안 취지에는 깊이 공감했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여성) 인재를 안 키운 기업이나 우리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는데 늦었다고 생각한다. 의무공시로 빨리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3분의 1은 과도하다”, “의무공시도 기업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할당을 못 채웠다고 (공시)하면 사회단체들이 ‘여성혐오 10대 기업’ 해가지고 난리가 날 것”이라며 “기업인들을 한쪽으로 내몰면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률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의무 규정에 반대했다. 이에 정무위에서는 여성 이사 수를 최소 1명으로 축소하고, 기업이 준수 여부를 자율공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법사위에서는 의무 규정마저도 노력 규정으로 바뀌었다. “국가와 지자체에서도 기관마다 성별 균형에 대한 노력 의무 규정이 있는데, 민간 영역에서 강행 규정을 담기에는 영업의 자유와 사적 자치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때에도 ‘남성에 대한 역차별’과 영업행위에 대한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이 득세한 가운데,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입법)조사관들이 잘못 알고 있다”며 외국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이사회 인원이 9명 이상인 경우는 남녀 각각 40% 이상의 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준수하지 못하면 조직개편 의무가 주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상장폐지될 수 있도록 돼 있다. 독일은 근로자 수 2천명 이상인 상장회사(약 110여곳)는 감독이사회(사외이사 격) 구성원의 30% 이상을 여성한테 할당하도록 하고, 비율이 충족되지 않으면 해당 직을 공석으로 두도록 한다.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정한 비율을 경영목표로 제시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기업법에서 캘리포니아에 주된 사무실을 둔 상장사는 올해 말까지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했다. 2021년 말까지는 이사회 규모가 6명 이상인 경우 3명의 여성 이사를 둬야 하고,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금융위가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조원이 넘는 국내 상장사는 151곳으로, 이사 1109명 중 여성 비율은 3.1%(34명)에 불과하다. 지난 10월 크레디스위스가 세계 3천여개 기업을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40개국 중 이사회 여성 비율은 한국(3.1%)이 일본(5.7%)과 파키스탄(5.5%)에 이어 꼴찌였다. 1·2위 국가인 프랑스(44.4%)와 노르웨이(40.9%)는 물론 전체 평균 여성 비율(20.6%)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박경서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성별 구성 등 이사회 다양성을 갖춰야 집단적 사고에 빠지는 경향에서 벗어나 위험관리와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일반적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도 이사회 다양성을 주요 투자 고려 요소로 삼는 경우도 많다. 법 규정 이전에 기업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활발히 나서야 하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벌칙 규정도 없이 노력 조항으로 남게 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두고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장(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관련 단체들은 자산 2조원이 넘는 기업 이사회 선임을 모니터링하고 발표할 것”이라며 “기업으로서도 사회적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운열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일단 첫발을 떼는 게 중요하다”며 “이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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