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ELS 담은 신탁 판매 허용…금융위, 은행권 압박에 ‘굴복’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및 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은행장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 제공.

금융위, 은행권 전방위 압박에 ELT 판매 허용
10월말 기준 약 37조~40조원 규모
코스피200, 홍콩H지수 등 5개지수 기초자산만 대상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및 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은행장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 제공.

금융위원회가 고난도 금융상품의 은행 판매 제한 조치와 관련해 은행권이 강하게 요구했던 신탁 판매를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9월 취임 이후 내놓은 가장 굵직한 대책에서 은행권의 전방위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돼 이후 정책 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금융위는 12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개선 방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지난달 14일 발표한 대책에서는 고난도 금융상품에 해당하는 사모펀드와 신탁의 은행 판매를 제한하기로 했으나 은행권이 기존에 이미 판매한 대표적인 지수에 한하여 허용해줄 것을 요청해왔다”며 “감독, 검사 및 판매규제 강화와 함께 은행권 건의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기초자산이 주가지수이고 공모로 발행됐으며 손실배수 1 이하인 파생결합증권을 편입한 신탁(ELT)에 한해 판매를 허용해줄 것으로 요청해왔으며, 금융위는 이를 수용했다. 다만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는 코스피200, 에스앤피500, 유로스탁스50, 홍콩H지수, 니케이225 등 5가지다. 대상이 되는 이엘티 판매량은 지난 11월말 잔액 이내로 제한되는데, 그 규모는 37조~40조가량이다. 금융위는 “지난달 DLF 대책을 통해 발표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관련 강화된 투자자 보호장치를 준수하고, 신탁 편입자산에 대한 투자권유 규제를 엄격히 적용한다”며 내년에 은행권 신탁에 대한 금융감독원 테마 검사를 실시하는 등 보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 쪽은 지난달 대책 발표 직후 은행권의 반발에 대해 “신탁은 위탁 고객과 회사(수탁자) 간 일대일 계약에 따른 것이라, 편입되는 상품이 공모형이라고 해서 해당 신탁을 공모로 볼 수는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신탁까지 규제하지 않으면 은행들이 신탁을 통해 사모펀드 판매 제한을 우회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은 위원장도 은행이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한다며 강경 대응할 뜻을 시사해왔는데, 결과는 달랐다.

금융위는 또 고난도 금융상품의 기준으로 상품구조의 복잡성, 투자원금의 최대손실가능액, 거래소 상장 여부를 주된 요소로 구체화했다.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최대손실가능액이 원금의 20% 초과하는 상품이 해당된다. 여기에는 파생상품과 파생결합증권, 파생형 펀드(신탁·일임)가 포함된다. 다만, 기관투자자간 거래 및 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은 제외하기로 했다. 최대손실가능액은 상품구조상 위험에 따른 손실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발행인의 신용위험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상품구조가 복잡하지만, 원금의 80% 이상이 보장되도록 설계된 파생결합증권은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다. 주식, 채권(전환사채·교환사채 포함), 부동산 등 실물투자상품과 주식형·채권형·혼합형 펀드, 주가지수를 단순 추종하는 펀드 등은 상품구조가 단순한 것으로 분류돼 은행 판매가 가능하다.

박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