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3 10:01
수정 : 2019.12.13 19:25
기업-은행 수락하면 조정 성립
금융감독원이 키코(KIKO)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입은 기업 4곳에 대해 피해금액의 평균 23%를 은행에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13일 금감원은 전날 열린 분쟁조정위원회에서 4개 기업(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에 키코를 판매한 은행 6곳(신한·우리·KDB산업·KEB하나·DGB대구·씨티은행)에 모두 255억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기업마다 배상비율과 배상금액은 각각 원글로벌미디어(41%, 42억원), 남화통상(20%, 7억원), 재영솔루텍(15%, 66억원), 일성하이스코(15%, 141억원)로 책정됐다.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적용되는 기본배상비율 30%에다가 개별 사정을 고려해 가감 조정한 결과다. 금감원은 “은행이 위험성이 큰 장외파생상품을 권유할 때에는 더 무거운 고객 보호의무를 부담해야함에도, 판매은행들은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헤지 계약을 감안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체결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주거래은행으로서 기업의 외환 유입규모 등을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경우나 만기를 과도하게 장기로 설정해 리스크를 증대시킨 경우는 은행의 가중 사유로 보고 배상비율에 더했다. 반면 기업의 규모가 크거나 파생상품 거래경험이 많은 경우, 장기간 수출업을 영위해 환율 변동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경우는 기업의 자기책임을 부과해 배상비율에서 뺐다.
이제 공은 은행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키코 분조위 결정은 앞서 해외금리연계 파생금융상품(DLF)건과 달리 은행들이 조정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분조위 결정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받아들여야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지닌다. 은행들은 배임이 될 수 있다며 키코 배상에 난색을 표해왔다. 이번 분조위 결정은 당사자인 기업과 은행이 20일 안에 조정을 수락하는 경우 조정이 성립된다. 당사자가 요청할 경우 연장할 수도 있다. 만약 이번 조정결정이 성립되면 금감원은 과거 분쟁조정도 소송도 진행하지 않은 남은 키코 피해기업 150여곳에 대해서는 자율조정(합의권고)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 키코 분쟁조정 재조사에 착수하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사건 발생은 10년이 지났고, 2013년 대법원 판단이 난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성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 부원장보는 “키코 피해기업과 은행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며 “지금이라도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야 말로 신뢰가 근본인 금융산업이 오래된 빚을 갚고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은행 쪽에 조정안을 수락할 것을 당부했다.
키코 통화옵션상품은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헤지 수단으로, 일정 구간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수출기업에게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환차손을 보게 된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이 된 4개 피해기업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이 급등하면서 1500억원가량, 전체적으로 3조원 이상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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