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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 카카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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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상징이 ‘벼락 재벌’로
김범수 의장을 ‘브라이언’이라 호칭
수평적 기업문화, 기존 재벌과 딴판
‘오너경영체제’ 탈피, 인터넷·모바일 집중
간결한 소유구조 등 재벌과 차별화
새로운 재벌 유형 제시 가능성 주목
“재벌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카카오의 강유경 커뮤니케이션 2파트장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우리가 왜 재벌이죠?”
카카오는 자산이 5조원이 넘어, 4월 초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삼성·현대차와 같은 재벌 반열에 오른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은 경제적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카카오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실제 카카오 안에서는 재벌을 가리키는 ‘그룹’이라는 말을 안 쓴다. 대신 스스로를 ‘카카오공동체’라고 부른다.
이유가 뭘까? 우선 심리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불과 3년 전인 2013년 초까지만 해도 카카오는 벤처였다. 갑자기 재벌로 불리는 게 어색할 수 있다. 최근 재벌 2·3세들의 ‘갑질’이 상징하듯 재벌의 부정적 이미지도 부담이다. 경영적 이유도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을 포함한 27개 법에 의해 60여건의 각종 규제를 받는다. 이수진 커뮤티케이션팀 이사는 “카카오가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계열사들이 벤처캐피탈 지원을 못받고, 우수인력들의 병역특례 혜택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카오가 ‘재벌’이라는 옷을 싫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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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재벌 대기업 총수가 회사에 나타났을 때 풍경은 어떨까? 한 10대 그룹 고위임원은 “모두들 회장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을 피한다. 1층 현관에는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 탑승을 도와주는 직원들만 보인다. 다른 그룹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의 총수는 지분 18.64%를 가진 김범수(50) 이사회 의장이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의 서울 주재 기자는 지난해 말 김 의장을 취재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가 회사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례 2.
카카오에서는 이사·부장·과장 같은 직급 호칭을 들을 수 없다. 대신 모두 영어식 이름을 부른다. 이수진 이사는 진, 강유경 파트장은 리오다. 김범수 의장도 예외가 아니다. 직원들은 그를 브라이언이라고 부른다. 이수진 이사는 “모두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영어식 이름을 부르니까 본명을 모르는 직원도 많다”며 웃었다.
#사례 3.
카카오에는 김 의장을 제외하고는 개인 사무실이 없다. 대표와 7~8명의 부사장들 역시 다른 직원들과 책상을 맞대고 일한다. 보고용 결제판도 따로 없다. 모든 결제는 사내 인터넷망으로 이뤄진다. 윗사람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이런 조직문화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조직체계는 최고경영자→총괄부사장→팀→파트→셀(세포)로 단순하다. 또 단위조직이 수시로 바뀐다. 강유경 파트장은 “조직은 목적이 달성되면 해체되고, 새 목적에 맞는 조직으로 재구성된다. 스타트업(신생기업)처럼 유연하다”고 말?다.
#사례 4.
이석우 ㈜카카오 전 대표는 2014년 42억4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전체 상장기업 등기임원 평균 보수(2억8500만원)의 15배에 달한다. 하지만 그 중 40억원(94%)은 회사에서 받은 스톡옵션 행사 이익이다. 순보수는 2억4500만원으로 웬만한 중소기업 대표 수준이다. 직원들의 2015년 평균 급여는 1억33247만원으로 삼성전자(1억300만원)보다 30% 이상 많다. 하지만 역시 스톡옵션 행사 이익이 포함된 것이다. 스톡옵션은 벤처 시절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였다. 카오의 등기임원과 직원 간 평균 보수 격차는 1.5배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무려 66배다.
총수를 무서워하지 않는 직원들, 직급을 생략한 영어식 호칭, 칸막이 없는 사무실, 비대면 결제, 최고경영자와 직원 간 작은 보수 격차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잘 보여준다. 재계 1위 삼성은 최근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의식과 문화를 바꾸기 위한 ‘스타트업 컬처 혁신’을 발표했다. 열린 소통과 지속적 혁신이 가능한 수평적 조직문화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카카오는 삼성이 자신들을 벤치마킹한다고 자부한다. 카카오가 재벌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다른 중요 기준은 지배구조와 경영전략이다. 한국 재벌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총수 일가의 가족경영과 세습, ‘문어발’ 확장, 순환출자를 이용한 복잡한 소유구조가 그것이다.
재벌은 총수가 직접 최고경영자(회장)를 맡아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오너 경영체제다. 총수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장자가 세습한다. 하지만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일상적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자신은 큰 방향을 정하고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찾는 데 몰두한다. 매일 출근하지도 않는다, 가족의 경영참여도 매우 제한적이다, 계열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김화영 대표는 김 의장의 동생인데, 실질적으로 그룹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 의장의 두 자녀는 대학생이다. 아직 연소한 만큼 향후 경영 참여나 세습 여부를 단정짓기는 이르다. 다만 두 자녀는 카카오 지분이 없다. 다른 재벌 2·3세들은 어릴 때부터 지분을 상속·증여받아 세습을 준비하는 게 관행이다. 카카오는 완전한 소유-경영 분리는 아니지만 재벌의 오너 경영체제와 분명 다르다.
재벌은 서로 관련이 없는 수많은 사업을 힌다. 삼성만 해도 전자·금융·중공업· 조선·건설·호텔·광고·의류·물류·의약·보안·시스템통합·급식·테마파크 등 다양하다. 이런 비관련 사업다각화는 한 업종의 경기가 나빠도 다른 업종이 좋으면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문어발식 확장은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낳는다. 또 한 곳의 부실이 심하면 다른 곳들도 연쇄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카카오도 계열사가 58개(공정거래법상 기준은 45개)에 이른다. 불과 1년 새 22개 늘었다. 지난달에는 음원사업자인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지분 76.4%를 1조8742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카카오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가 활발하다”고 설명한다. 카카오 계열사들은 대부분 모기업인 ㈜카카오와 연관된 소프트웨어, 콘텐츠, ‘O20’(온-오프라인 연계사업), 게임사업을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특화된 전문그룹이라는 점에서 기존 재벌과 차별성이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020사업 일환으로 콜택시 서비스인 ‘카카오택시’를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호출이 5천만건을 넘을 정도로 순항 중이다. 카카오는 대리운전과 헤어숍으로도 O2O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궁극적으로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 분야를 연계하는 ‘모바일 생활 플랫폼’을 추구해 국민 생활에 즐거움과 편리함을 주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 콜택시, 대리운전, 헤어숍 사업자들은 카카오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94%를 차지하는 지배력(독점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위협한다며 불안해한다. 카카오의 020 사업이 확대될수록 우려와 갈등은 커질 것이고, 결국 경제력 집중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업 진출도 쟁점이다. 카카오는 한국투자금융과 손잡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은행법상 카카오 같은 산업자본은 은산분리 원칙(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에 따라 지분 10%(의결권은 4%로 제한) 이상을 가질 수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 제출됐으나 통과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다. 카카오는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뜻하는 핀테크 산업의 발전은 세계적 흐름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와 인터넷기업인 텐센트(모바일 메신저 ‘위쳇’ 운영)는 이미 은행업에 진출했고, 미국 페이스북도 아일랜드에서 은행업 인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의 소유구조는 김범수 의장→㈜카카오→계열사들 이어지는 단순한 형태다. 모회사인 ㈜카카오는 각 계열사들 지분을 최소 50% 이상 보유하고 있고,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없다. 총수가 평균 2% 정도의 지분만 갖고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과 다르다.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를 막으려는 것이다. 지정 그룹들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출자·채무보증·신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 제한, 금융회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계열사 부당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여러 규제를 받는다. 카카오는 이런 공정위 규제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이수진 이사는 “다른 재벌들은 가족, 친족들로 구성된 경영진이 복잡한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지만 카카오는 전문경영인체제 아래 투명하게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는 수평적·개방적 조직문화, 오너 경영체제와 다른 독특한 지배구조, 인터넷·모바일 집중 전략, 간결한 소유구조 등 많은 점에서 기존 재벌과 다르다. 하지만 020 사업 관련 경제력 집중 논란 가능성,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원칙과의 충돌, 자녀들의 경영 참여와 세습 가능성 등 아직 불확실한 부분도 남아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카카오는 탄생, 성장 배경과 경영 전략이 기존 재벌과 다르고, 앞으로도 자기만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경제력 집중 억제 대상으로만 여겨져온 기존 재벌의 변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작은 거인’ 카카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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