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5 19:43
수정 : 2016.07.14 10:59
‘벤처 신화’ 넥슨 도덕성 타격
회삿돈 이용 검사·판사출신 주주로
‘돈슨’ 이미지 벗으려 애썼는데…
넥슨 내부서도 “경영철학 의심”
진경준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이용해 120억원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게 넥슨 쪽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내 최대 게임업체로 자리매김한 넥슨이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자서전 성격의 책 <플레이>까지 내며 넥슨의 창업과 성장 과정을 ‘벤처신화’로 포장하기 위해 애써온 김정주 엔엑스시(NXC·넥슨 지주회사) 대표는 배임 및 뇌물 제공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일 넥슨이 언론에 배포한 ‘알림자료’를 보면, 넥슨은 2005년 퇴직 임원이 갑작스레 내놓은 주식을 인수할 상대로 진 검사장과 김상헌 네이버 대표(당시는 엘지 법무팀 부사장) 등을 급하게 물색했고, 신속한 거래를 위해 이들에게 회삿돈을 빌려줬다. 넥슨은 이와 관련해 “주식이 엉뚱한 곳에 인수되면 조기 상장 압박 등을 받을까 염려돼 회사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장기 안목의 투자자를 찾게 됐고, 매도자가 주식매매 대금의 수일 내 입금을 요구해 회삿돈을 빌려주게 됐다”며 “3명 모두 그해에 다 갚았다”고 설명했다.
주식 거래량이 3만주에 이르고, 빌려준 자금 규모도 13억원 가까운 거액인 만큼 최고경영자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넥슨 대표이사는 김정주 창업주였고, 그의 아내인 유정현(지금은 엔엑스시 감사)씨가 주식 및 주주 관리 업무를 총괄했다. 하지만 넥슨은 그동안 진 검사장의 비상장 주식 인수 배경 및 자금 출처 등에 대해 “주주 개인간 거래라서 알지 못하고, 확인해줄 수도 없다”고 하면서 진 검사장의 거짓말을 도와왔다. 이번에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에서 진 검사장에게 주식 매입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자 어쩔 수 없이 시인했다.
업계의 한 임원은 “김정주 대표가 잘나가는 법조계 인사들을 주주로 끌어들여 바람막이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돈슨’(돈만 밝히는 넥슨이란 의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컴퓨터박물관과 동네도서관을 운영하고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돕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벌여왔는데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넥슨 내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 한 팀장급 직원은 “회사 창업과 성장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상장 주식 매입 기회를 준 것도 모자라 회삿돈으로 주식 인수 자금까지 대줬다는 게 말이 되냐. 김정주 대표의 성과 분배 잣대와 경영철학에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진 검사장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여온 것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