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수상작 '세가지 열쇳말'
체온이 흐르는 디지털 세상을 지향하며 만들어진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HTA)’가 2회를 맞았다. 이번에도 사용자를 배려한 기획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우수한 편의성을 갖춘 다양한 영역의 후보작들이 경합을 벌여 수상작이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기술·서비스들의 핵심 가치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격차 해소, 공개, 연결이다.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서비스는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의 ‘보완대체의사소통’(AAC)이다. 보완대체의사소통은 온라인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가 사회적 책임 활동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재단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언어 표현이 어려운 이들이 쉽게 자신의 뜻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은 앱에서 표현하려는 내용을 담은 그림을 골라 상대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소통을 돕는 도구다. 윤종수(변호사) 심사위원장은 “의사소통에 곤란한 일을 겪는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온 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작에는 이처럼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정보의 확산과 소통이라는 열매에서 소외된 이들을 통합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한 작품들이 두루 뽑혔다. 특별부문 우수상으로 뽑힌 ‘청각장애 보조 앱’도 마찬가지다. 이 앱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주변의 알림과 위험 요소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마트폰이 주변 소리를 인식하고 진동을 울려 장애인이 이를 눈치채도록 해주는 방식이다. 자동차 경적, 아기 울음소리 등을 인식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개인이 이런 문제에 착안해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었다는 점도 높게 평가됐다.
소외는 장애에 국한된 게 아니다. 교육에서도 격차가 발생한다. 부모의 재산, 지역적 한계 등으로 야기되는 기회의 배제가 대표적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대학공개강의’(KOCW, www.kocw.net) 서비스는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으로서 사회·공공부문 우수작에 선정됐다. 이 서비스는 여러 대학의 우수한 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떠나 누구나 쉽게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까지 대학에서 17만3687개, 유관기관에서 4271개 등 모두 18만 개에 가까운 강의들이 등록되어 교육 기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격차 해소
말하기 어렵거나 잘 안들려도
앱 통해 비장애인과 쉽게 소통
대학 명강 모아 교육격차 좁혀
공개지자체 ‘공공데이터포털’ 시민에
관급공사 ‘알리미’ 투명성 높여
‘동네 위험지도’ 주민 알권리 도와
연결저작권 맞서 열린 지식저장창고
버스커와 공연장소 연결해 주는
공유경제 플랫폼 창작의욕 돋워
대학공개강의가 교육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새 기회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면, 구글의 ‘비영리단체 프로그램’(www.google.co.kr/intx/ko/nonprofits)은 현대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고 있지만 정부와 영리조직에 비해 자원이 부족한 비영리단체들에 필요한 기술적 자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특별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서비스는 구글이 내놓은 다양한 앱들과 광고 자원을 비영리단체들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지난해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우리나라를 찾은 에린 해터슬리 비영리단체 프로그램 사업 담당 총괄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구글의 임무는 전세계의 모든 정보를 누구나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시민단체들의 정보가 영리기업에 비해 확산이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사업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보 확산은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핵심가치의 하나이다. 이번 선정작에도 정보의 ‘공개’에 집중한 서비스들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경기데이터드림’(data.gg.go.kr)은 사회·공공부문 최우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서비스로, 경기도가 생산한 다양한 데이터를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하는 서비스다. 지난해 제1회 휴먼테크놀로지 사회혁신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서울시의 정보소통광장과 같은 개념의 서비스다. 경기데이터드림은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392종의 데이터셋을 공개했다. 공공 데이터포털 최초로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를 획득하고, 동영상·이미지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강화한 부분은 차별점이다.
서울시는 올해 ‘건설알림이’(cis.seoul.go.kr) 서비스로 지난해에 이어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건설알림이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공사의 개요, 규모, 결재 문서 등 각종 정보를 시민들이 누구나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게 공개하는 서비스다. 각종 텍스트 자료를 지도와 연동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개선한 것도 정보 공개의 원칙을 충실하게 반영한 장점이다.
지리데이터를 이용한 서비스로는 사회·공공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우리동네 위험지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안드로이드용 앱을 만든 사단법인 일과건강은 불산 유출사고 이후 참사 가능성이 높은 화학물질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해선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위험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 주민의 알권리가 보장될 때 시민에 의한 감시가 가능하고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앱을 통해 전국 3200개 사업장에서 취급하고 있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배출량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정보 가운데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기업은 영업비밀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정책은 관련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탓이다.
우수상을 받은 오픈액세스코리아(www.oak.go.kr)는 정보 공개가 미진한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의 협업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주도하는 이 서비스는 정부, 민간단체, 연구자 등 누구나 참여 가능한 ‘열린 지식협력체’를 표방하고 있다. 일종의 저장소와 같은 이 공간에 여러 주체가 다양한 연구 결과와 보고서 등을 보관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검색해서 이를 찾고 이용할 수 있다. 오픈액세스란 저자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관행에 맞서 법적, 경제적, 기술적 한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지식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연구자가 다양한 지식정보에 접근해 새로운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을 뿐 아니라, 공개한 연구자들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해 국내 학술 수준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 서비스들도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용자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버스킹플레이는 거리공연자(버스커)와 공연장소(버스킹존)를 연결해주는 신개념의 공유경제 플랫폼이다. 공원, 대형쇼핑몰, 공공기관 등은 비어 있는 공간을 좋은 소리와 볼거리로 채우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 한편 거리공연자들은 자신의 공연을 펼칠 공간과 들어줄 청중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 서비스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둘을 연결해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관악구청, 영화관 씨지브이(CGV) 등이 회원으로서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난해 8억4500만원의 매출도 올렸다.
텀블벅은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하는 크라우드펀딩 소셜 플랫폼이다. 요리, 건축, 사진, 영화, 음악 등 모든 창작 분야를 망라해 다루고 있다. 수공예 브랜드 ‘끌랑’의 휴대용 기타 제작 프로젝트, 웹툰업체 ‘레진코믹스’의 만화 단행본 <여자 제갈량> 등이 이런 연결을 통해 탄생한 창작물들이다. 네이버의 ‘그라폴리오’ 역시 창작자들이 일러스트레이션을 비롯해 음원, 드로잉 등 다양한 창작물을 올리고 서로의 작품을 발견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창작 플랫폼으로 주목을 받아 특별부문 우수상에 뽑혔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불투명한 영역의 정보를 공개하고, 창조적인 연결을 만드는 서비스들도 개인의 정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기초가 부족하다면 원래 취지가 훼손되고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보사회는 결국 개인들이 생성하는 데이터를 벽돌로 해서 구축되는 성이기 때문이다. 네이버프라이버시센터는 개인이 자신이 제공하고 있는 정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이런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모범 사례로서 이용자 부문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다른 선정작들도 서비스의 유용성과 창의성뿐 아니라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지 여부를 평가 요소로서 검증받았다. 윤종수 위원장은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는 2회에 접어들면서 사회 공공적으로 의의가 있는 서비스들을 선별해 소개한다는 의미를 안착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하드웨어나 디바이스 영역에서도 이런 취지에 걸맞은 제품들이 늘어서 수상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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