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신세기통신 합병해 막강한 시장지배력 행사해온 게 발목” 분석
“지금 상태로는 방송·통신사업자 인수합병 불가능” 지적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씨제이(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허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5일 저녁, 한 모임에서 정부·학계·법무법인 등에 몸담고 있으면서 통신시장에 대해 나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해당 사업자들이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등 거세게 반발한다고 전하자, 학계 전문가가 “애초 너무 무리한 시도였고, 자업자득 아니냐”고 말을 이었다. 공정거래법에 밝은 변호사는 “에스케이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합병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해온 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과 씨제이헬로비전은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받아든 날부터 초상집 분위기다.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추진하다 이처럼 처참하게 좌절하기는 처음이다. 더구나 최태원 회장까지 관여한 일이라는데…”라고 말했다. 이 업체의 다른 관계자는 “언론에는 ‘후속 대책을 고민중’이라고 했지만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벌써부터 누가 책임질 것인가란 얘기가 오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씨제이헬로비전의 분위기는 더 침체돼 있다. 이 업체 주가는 5일 13.33% 떨어진 데 이어 6일에도 3.37% 빠졌다.
업계의 관심은 공정위가 어떤 근거로 불허 결정을 했는지에 모아지지만, 공정위는 물론이고 사업자들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다. ‘케이블방송 권역별 유료방송 점유율을 잣대로 경쟁제한성을 평가한 것 같다’는 언론의 해석에 공정위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하고, 사업자들은 “그건 아닌 것 같다”면서도 “심사보고서 내용을 다 검토하지 못해 알지 못한다”고 뜬금없는 답을 내놓고 있다.
이날 만난 정부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허용하면, 그렇잖아도 정부조차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해진 에스케이텔레콤의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고, 이게 방송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신세기통신 인수·합병 인가의 적합성을 따져야지, 당시 상황을 잣대로 이번 건을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에스케이텔레콤이 지금처럼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한 다른 통신·방송 사업자를 인수·합병하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0년 가입자 점유율 1위 사업자였던 에스케이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은 3위 사업자인 신세기통신을 인수해 점유율을 60% 이상으로 높였다. 공정위가 경쟁제한성 악화를 이유로 불허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으나 조건부로 인가됐다. 공정위 간부가 전원회의를 앞두고 <한겨레>를 찾아와 내부적으로 정한 인가 조건을 설명하며 “인가해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해달라”고 하소연하기까지 했다.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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