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9.30 10:26 수정 : 2016.09.30 16:43

개발 중단 84명 전환배치 계획에
‘위로금도 안주고 짐싸라는 꼼수’ 의심
덩치 커진 게임업계, 인력관리 주먹구구

웹젠의 기업이미지(CI). 웹젠 제공
회사는 하던 업무가 갑자기 사라진 직원들을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차라리 권고사직이나 해고 처리가 낫다’고 합니다. 온라인 게임 ‘뮤’ 로 알려진 ㈜웹젠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이자, 게임 개발을 전담하는 웹젠앤플레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논란’입니다. 지난 2000년에 설립된 웹젠은 자회사들까지 합쳐 모두 670명이 일하고 있는 중견 게임업체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8일 웹젠 홍보팀 설명을 들어보면, 이 회사는 조만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온라인 다중접속 온라인역할수행 게임(MMORPG) ‘뮤 레전드’를 제외한 모든 신작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결정에 따라 웹젠앤플레이에서 일하고 있던 프로그래머·그래픽 디자이너·기획자 등 개발진 270명 가운데 84명이 일하고 있던 팀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회사는 팀이 사라진 직원 모두를 다른 팀으로 보내는 ‘전환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 회사에서 새로운 게임 개발 계획이 없기 때문에 전환배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10월31일까지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회사 입장과 달리 구조조정 대상이 된 직원들은 회사 안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밝힌 구조조정 대상 직원 수와 직원들이 주장하는 수(120명 이상)도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28~29일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웹젠 구조조정과 관련해 “나는 프로그래머라 갈 곳은 있을 것 같은데 주니어 기획자나 그래픽분들은 심각하더라” “회사는 전원 전환배치 내걸고 설명회를 했지만 배치될 자리가 많게 잡아야 서른명 내외. 전원 전환배치 할거라며 신청 안하면 자진퇴사가 결론” “권고사직 안시키려고 어거지로 끼워넣고 잠잠해지면 쳐내려는 거로 밖에 안보임”이라는 글이 올라와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내건 전환배치는 현실적으로 고용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며, 위로금 지급도 없이 한 달 안에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인 퇴사 형식이 아닌 스스로 짐을 싸서 나가라는 건 가혹한 처사라는 겁니다. 자진퇴사를 할 경우, 퇴직금만 받을 수 있으므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권고사직이나 해고 처리를 해 달라는 씁쓸한 주장입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대해 회사쪽은 “전환배치를 위해 열어둔 직무 자체가 50개가 넘는다. 유통을 전담하는 본사(웹젠) 기술본부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미니게임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해당 직무에도 전환배치를 받고 있다”며 팀을 잃은 모든 직원들이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에 올라온 웹젠 구조조정 상황을 설명한 게시물.
그러나 복수의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웹젠 개발진들의 주장이 회사 쪽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작 게임 개발을 진행하다 중단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갑자기 할 일을 잃은 개발진들에게 석 달 가량 여유시간을 주고,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회사는 극소수입니다. 윗선의 결정에 따라 프로젝트 시작과 중단이 결정됨에도 대다수 업체는 제대로 된 배려나 보상 없이 직원 스스로 짐을 싸게 만든다는 거죠.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은 “게임업은 회사 차원에서 개발자를 어느 팀에 발령내는 게 아니라 각 팀이 필요한 인력을 뽑는 형식이다. 회사에 남으려면 기존 팀으로부터 간택을 받아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개발을 축소하면 갈 곳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게임업체 직원은 업계가 기획자나 디자이너들을 쉽게 뽑고 자르는 데 익숙하며 위로금조차 주지 않으려는 꼼수도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회사에서 ‘미안하지만 일이 없다’고 설명하고, 사내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알아봐주고, 그래도 안 되면 근무 연수에 따라 위로금을 지급하거나 권고사직 처리를 해주면 직원들이 상처를 덜 받는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비용과 인건비가 들어가잖나.”

또 다른 게임개발자는 상장사의 경우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 권고사직 처리를 잘 해주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게임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제대로 된 개발인력 육성·관리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 피시(PC) 온라인 시장에서마저 국산 게임이 외국산에 밀리고, 수출도 예전같지 않으면서 업계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웹젠에서 벌어진 논란이 다른 업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큰 까닭입니다. 현재 웹젠의 경영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이 회사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누적 순이익은 약 236억원이었습니다. 웹젠 최대주주는 지분 27.2%를 보유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청년최고위원이기도 한 그는 의원 당선 이후인 지난 5월 웹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웹젠은 최근 신규 게임 개발을 중단하면서 개발인력을 다른 팀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직원들은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며 불안해하는 한편, 한 달 안에 퇴직금만 받고 나가라는 건 가혹한 처사라는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웹젠 홈페이지 캡처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표면적으로 회사의 전환배치 방침은 감원에 견줘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권고사직 처리를 해달라’고 한다니, 이는 되레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 같다”고 씁쓸해했습니다. 다른 업종에서도 모욕감을 안겨주는 ‘전환배치’를 통해 사실상 퇴직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웹젠앤플레이 직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유 노무사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직원들이 퇴사하지 않고 버티면, 회사의 진짜 의도가 드러날 것이다. 전환배치를 통해 인력을 안고 가려한다면 회사가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할 것이다. 그러나 전환배치가 퇴직 압박용이었다면 회사는 당황하게 되고 협상을 하자고 할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