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07 22:24
수정 : 2016.11.07 22:24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소비자 안전 위한 것이라지만
사용자 재산에 강제 개입한 셈
나쁜 선례 남기지 않으려면
법원 판단 구해보는 건 어떤가
삼성전자는 9월20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갤럭시노트7 배터리 충전을 60%까지로 제한했고, 10월29일에는 바꿔준 기기를 대상으로 같은 조치를 또 취했다. 그때마다 “어떤 근거로 취한 조치냐”고 물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해당 사업부에 확인해보겠다”고 한 뒤 소식이 없다.
‘근거’를 물어본 이유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 같다는 의문이 들어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을 98만8900원(출고가)에 팔았다. 거래 서류에 서명하고 기기를 건네받는 순간부터 해당 기기는 사용자 재산이다. 삼성전자가 일방적으로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를 60%까지만 충전되게 한 게 납득이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다. 충전이 60%까지로 제한되면 가득 충전해도 하루를 버티기도 어렵다. 중간에 다시 시간을 내 충전하거나 보조 배터리를 갖고 다녀야 한다. 여간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소비자 안전을 위한 조처”라고 한다. 각 나라 정부들도 갤럭시노트7의 비행기 반입 중단 조처와 함께 사용 자제를 요청했고, 우리나라 국가기술표준원은 갤럭시노트7을 서둘러 회수하라는 주문까지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선 갤럭시노트7 회수율이 30%에 그치고 있다”며 “사용자들의 안전을 위해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구멍’(교환·환불)을 만들어놓고 ‘모는’(배터리 충전 제한) 게 문제가 되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이상 발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서둘러 회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직접 고객이자 국민인 갤럭시노트7 사용자들에게 ‘채찍’을 드는 것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 삼성전자가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이른바 ‘당근책’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 통신요금 지원이나 스마트폰 액세서리 쿠폰 지급, 차기 신제품 구매 시 혜택 같은 보상책으로 교환·환불을 독려하는 게 옳다. 안먹히면 보상을 키워야지 채찍을 휘두르는 건 말이 안된다. 불편을 주거나 재산권을 침해하는 충전 제한은 채찍에 가깝다.
충전 제한이 당위성을 가지려면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거나 사용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충분한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그나마도 기업이 직접 채찍을 들어선 안 된다. 정말로 필요한 조처라면 충분한 근거를 준비해 정부기관이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은 충전 제한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한겨레>에 “자발적 리콜 이행을 점검하고는 있지만 배터리 충전율 제한은 삼성전자에 권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정부의 주문·권고·승인조차 없는 상태에서 사용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불편을 끼치는 일을 서슴없이 벌인 셈이다.
때마침 한 독자가 갤럭시노트7 사용자라며 이메일을 보내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길래 삼성전자 쪽에 답을 채근했는데 “갤럭시노트7 건은 그만 잊어달라”는 뜬금없는 답을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갤럭시노트7 사용자들에게 물어본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사용자들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충전을 60%까지로 제한한 것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아가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김에 이 부분도 포함시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를 권해본다.
그냥 넘어가면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js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