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9 21:03
수정 : 2017.01.10 09:23
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신 것은 일흔이 넘어서였다. 둘째 며느리를 옆에 앉힌 채, 방바닥에 엎드려 기역 니은을 쓰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길에 간판을 읽을 수 있으니 참 좋다”라고 하셨다. 순간 마음이 아파왔다. 글을 몰라서 겪었을 불편함보다 글을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디지털맹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디지털을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지나갈 유행으로 생각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때로는 세상의 변화 따위는 괘념치 않는 달관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에 취해 있을 때, 은행 창구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로봇이 공장의 노동자를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전문가의 영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미 현실이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절반에 가까운 직업이 사라진다는 무서운 경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 다른 현실도 있다. 대통령을 둘러싼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녹취 파일과 디지털 기록이다. 매순간 우리 모든 행위가 기록되고 지울 수 없는 디지털 현실. 혼자만의 내밀한 사적 영역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는 평생 작은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
이미 다가온 미래에 눈을 감는 것이 디지털맹이라면 자랑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문맹의 부끄러움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다. 거센 디지털의 물결 앞에 아무런 준비 없이 서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디지털맹을 대물림할 것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방바닥에 엎드려 한글을 깨친 어머니처럼 우리도 마땅히 디지털을 배워야 한다.
이재포 협동조합 소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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