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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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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김국현의 IT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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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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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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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국내 대형 게임회사 6개사의 매출이 6조 원을 넘었고, 올해는 7조 원을 바라본다고 한다. 대기업의 매출이 좋은 것이야 그러려니 할 일이지만, 그 내역이 흥미롭다. 하나같이 IP 기반이라는 점이다. IP라는 말은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이라는 원뜻보다는 라이선스 받아서 쓸 수 있는 캐릭터 상품군 정도로 쓰이고 있는데, 이 IP 확보가 성공의 모든 비결이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 되었다. 국내의 경우 현재 대표적으로 리니지의 확장을 꼽을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보아도 포켓몬 고, 수퍼마리오 런 등 인기게임은 모두 속편이나 재탕이다. 이뤄질 것은 이미 한 세대 전에 이뤄졌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될 놈만 되고, 할 수 있는 놈만 할 수 있는 세계다.
7조 원 하니 또 떠오르는 뉴스가 있다. 디즈니는 작년 한 해 영화 티켓만 7조원 넘게 팔았다. 작년 글로벌 박스 오피스 순위 1~5위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로그 원: 스타워즈>, <도리를 찾아서>, <주토피아>, <정글북>. 모두 디즈니였다. 할리우드로서도 역대 최고 기록이다. 픽사, 루카스필름, 그리고 마블을 데리고 있는 디즈니이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디즈니가 원래 가지고 있던 풍성한 만화 왕국에, 픽사의 세련된 애니메이션, 여기에 스타워즈의 팬덤 및 마블의 온갖 캐릭터들의 면모를 보면, 이 바닥도 가문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구나 납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는 영화관을 떠난 뒤에도 각종 파생 상품으로 테마파크에서 장난감까지 더 짭짤한 부수입을 준조세처럼 거둬들일 것이다.
콘텐츠가 왕인 세계. 그래서인지 콘텐츠는 왕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비디오 스트리밍 업계의 왕인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꽤 진지하다. 그 예산이 7조원가량이라 한다. 넷플릭스의 경쟁자인 아마존도 이에 질세라 열심이다. 자본 투하 여력에서 남다른 이들이 만들어 내는 ‘미드’의 퀄리티는 상당해서 골든 글로브 등 상복도 나쁘지 않다. 이제 심지어 애플마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설 것이라는 풍문이 흐르고 있다.
풍성한 자원을 써서 만들어진 양질의 콘텐츠는 때깔이 좋다. 그리고 일상에 지치고 바쁜 사람들은 희소한 시간 자원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모처럼의 여가 생활이기에 손실 회피 성향이 발휘된다. 순위와 별점과 조회 수와 같은 객관적 데이터를 찾게 된다. 인터넷 덕에 이런 일은 너무나 쉽다. 실시간 검색어 따위는 내가 무엇을 원하면 좋을지조차 알려 준다. 스마트폰의 추천 알림은 지금 뜨고 있는 이걸 놓치면 손해 볼 것 같이 만든다. 내 욕망을 남이 추천해 주는 시대. 이미 우리는 잘 적응하고 있다.
콘텐츠가 왕이긴 왕인가 보다. 사람들은 그 왕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있다. 콘텐츠의 가치를 선별해 주기를 원한다. 모아주고 요약해 주기를 원한다. 예능 TV를 요약한 기사가 포털에 도배된다. 이상한 풍경이다.
일방적인 미디어가 아닌 쌍방향의 개방 공간 인터넷에는 원래 콘텐츠 쏠림과 집중 현상을 해소할 희망이 있었다. 기발한 콘텐츠가 하룻밤 만에 떠서 일약 스타가 되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면 세상이 꼭 알아볼 것이라는 웹의 낙관성은, 이를 알아보게 해 줄 이들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포털도 검색엔진도 소셜미디어도 결국은 그렇게 오늘의 위치에 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정보의 바다로 나를 안내하기 위한 길잡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내가 사육되고 있는 양식장일지도 모른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같은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우리는 ‘좋아요’를 누르고, 광고를 보면서, 사료처럼 나를 위해 특별히 정제되어 나오는 정보를 받아간다.
문제는 이러한 얼개가 무한대의 정보 바다에서 내가 모처럼 만든 콘텐츠가 드러나게 하는 대신, 될 놈만 더 되게 하는데 얼마든지 일조할 수 있다. 그 편집인이 알고리즘이든 사람이든, 이 얼개란 얼마나 엉성하고, 조작 가능한 것이던가. ‘어뷰징’이 근절되지 않고 최근 가짜뉴스가 치고 올라와 회자되는 것을 보면, 유명해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는 풍조의 끝을 보는 것 같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니 ‘탈 진실(post truth)’이니 모두 이런 얼개를 믿고 나타난 현상이다.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콘텐츠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최근의 자극적인 개인 방송 콘텐츠는 이 구조에 스스로를 최적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에게 공유된다는 미래의 미디어였나.
속칭 파괴적 혁신에서 파괴되는 것들은 작은 것들이었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길모퉁이 음반점은 추억의 명물이 되어 버렸다. 브랜드가 아니면 사지 않고, 재벌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취직하지 않으려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사회. 간판이 내용보다 중요하니, 작은 가게는 사라지고 프렌차이즈만 남는다. 쉽게 공급을 탓하지만, 공급은 수요에 맞춰 빠르게 변모해 간 죄밖에 없다.
빛나는 것들은 때로는 조용하다.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걸 발견해 나가는 것이 원래 우리의 삶이었다. 이제 더 쉽게 발견하고 나누기 위한 도구도 손안에 있다. 우연한 발견이라든가, 생활 속의 작은 기쁨은 덜 자극적이지만, 나누는 순간 인간이 지닌 사회성을 일깨운다. 오감으로 직접 느끼고 그 느낌을 직접 표현하는 원시적인 일. 귀찮은 일이다. 악기를 매고 내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기개, 쑥스럽지만 할 말을 하는 멋쩍음. 그리고 약간 어딘가 못 미치고 못 미더워도, 그 시도를 기특해하고 존중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소비하는 일. 웹의 시작도 그랬듯이, 낙관적이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새롭거나 좋은 콘텐츠를 찾아 나서서 발견하고 소개하고 나누고 좋아해 주고 봐주는 일. 이 소박한 노력이 왕만이 콘텐츠를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희망을 줄 수 있다. 전설이 된 세계관의 시작은 모두 소박했듯이.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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