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5 11:56
수정 : 2017.03.0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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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X 폐지 서명운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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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김국현의 IT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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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X 폐지 서명운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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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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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씨가 공인인증서 철폐 공약을 내놨다길래 네이버에서 ‘공인인증서’를 쳐보니 27인치 모니터 한 화면을 공인인증서 관련 광고가 온통 뒤덮어 버렸다. 공인인증서는 이처럼 그 ‘가두리’에 속한 이들에게는 달콤한 꿀을 화수분처럼 뿜어내는 더없이 짭짤한 비즈니스가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기사를 살펴보니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를 폐지하겠다”는 주장이었는데, 이 공약은 이미 지난 대선 때도 안철수 캠프에서 주장하여 문재인 후보 공약으로 넘어가 화제가 되었던 오랜 이야기. 그래도 당장의 청량감을 주기에는 좋다. 하지만 보통 각오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그저 증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곪게 하는 진짜 원인이 뽑히지 않으면 곧 더 지독한 형태로 재발할 터이다.
현 정부에서도 소위 ‘천송이 코트’ 해프닝으로 액티브X를 없애라는 지령이 탑다운으로 하달된 적은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은 실행파일(.exe)을 직접 설치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구조였다. 가두리는 이 정도의 압력에는 얼마든지 새로운 꼼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공고하다. 이 허탈한 궁여지책을 솔루션이라고 내놓는 풍경은 해외토픽감이었지만 오히려 진지했다. 국민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불편이 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법 역시 결과일 뿐이다. 법을 애초에 그렇게 만들도록 한 원인은 바로 이 가두리의 존재에 있기에, 설령 법이 개정되더라도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들. 한국 사회 특유의 이 가두리 구조. 이 안에만 속하면 안심할 수 있다. 그 정점에는 사회의 안녕을 돌보기로 되어 있는 관료가 자리 잡고, 그 밑으로는 이들의 수족이 되는 산하단체 및 연구기관들이 어용(御用) 교수들과 짝을 이뤄 논리를 꾸린다. 그리고 아무런 이의 없이 이에 동조할 기업들이 동참하면 계획경제를 가동할 산업정책의 틀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 가두리의 규율을 충실히 지키며 분위기를 읽는 우등생을 채용한다. 이 구조의 멤버, 즉 대기업·공기업의 정직원이 되는 조건이란 바로 침묵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수많은 가두리로 점철되며, 이에 속하는 자와 속하지 못하는 자로 나뉜다.
기득권이 없는 세상은 없다. 다만 평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기득권이 엿보인 허점과 부조리는 비즈니스 찬스가 된다.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시장에서 검증한다. 가능성이 보이면 소비자의 응원을 믿고 제도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버나 에어비엔비 등 스타트업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 제도와 맞서 토론할 여지를 찾아내고 이를 믿고 저지른다. 사법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으니 무리를 한다. 이 용기가 조금씩 사회를 비틀며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회의 룰을 행정이 만들고, 해석도 관료가 한다. 처벌도 행정처분으로 관료가 임의로 하는 재량행정의 국가다. 이 모든 걸 혼자 하기 벅차니 다단계 하청의 가두리를 동원한다. 입법부 대신 관료가 꾸린 법체계는 수시로 이뤄진 땜질 덕에 결국 뒤엉킨 스파게티 코드가 되어 기득권의 옹벽이 된다. 이 구조적 복잡성 때문에 좀처럼 버그 수정이 쉽지 않은데, 이 버그의 발견 책임은 내부에는 없다. 새로운 일을 하려는 이에게 있다. 오죽하면 “한국의 스타트업은 컴퓨터 코드가 아닌 법전이라는 코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우스개가 나왔으랴.
하지만 설령 버그를 찾아내도 고칠 방법도 여의치 않다. 예컨대 공인인증서만큼 안전한 것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가 있다면 반증을 해보라, 대안을 제시하라 하지만, 그 실증 환경인 시장에서의 검증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애초에 입증 시도 자체가 힘들다. 인허가에서 실정법 위반까지 한 회사를 바보 만들 방법은 수없이 많다. 물론 관료의 재량으로 허가해 줄 수도 있겠지만, 전례와 관례 없는 일에 나설 리 없다. 임기 내에 작은 실패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때문입니다. 섣불리 바꿨다가 어찌하실 겁니까?”라는 가두리 내부의 목소리는 가두리를 이제 카르텔로 결속시킨다.
혁신의 효과는 전 국민이 나눠 갖게 되므로 미미하지만, 그 혁신이 자신들에게 주는 피해는 막대하므로 혁신을 막는 가두리는 공고해진다. 대신 가두리가 충분히 커지면 문제가 생겨도 나서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빨간 불도 모두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 대마불사다. 무서울 리가 없는 것이 설령 문제가 생겨도 그 해결 비용은 대개 당사자로서의 국민이 직접, 혹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면 그만인 무책임의 체계 속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치사회주의의 가두리는 그 안은 안락하기에 내버려 둘수록 외연이 확장된다. 제도 실험의 최초 실험자여야 할 스타트업은 기득권과 항전하는 이단아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자생력이 없으니 이런저런 정부 과제에나 동참하게 되고 가두리의 공범이 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회를 바꾸는 대신, 아이디어를 관에 바치고 누구도 다치지 않게 조율되어 내려온 미적지근한 아이디어를 묵묵히 수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공인인증서는 지금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반복적 병리의 사례이자 상징일 뿐이다. 공인인증서, 혹은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관제 정책들이 별 의미 없을 때, 그 바닥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저 침묵한다. 의미 없음의 입증 책임을 내가 나서서 지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공인인증서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리스크를 지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보다 어떻게든 가두리에 속해서 근면하게 충성하는 각자도생이 삶의 지름길인 세상. 문제는 이렇게 다양성이 허락되지 않은 채 굳어 버린 세계는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작은 변화도 허락하지 않은 결과 큰 파국을 맞은 일을 지구의 역사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한때는 고도성장의 비결이었던 이 가두리 사회.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큰 변화가 찾아와 버린 지금, 한국경제 침체의 최대 원인이 되어 버렸다. 공인인증서의 적폐, 그 본질은 대략 그런 것이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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