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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1 10:33 수정 : 2017.04.11 11:24

Weconomy | 김국현의 IT이코노미

그래픽_김승미

에디토이 대표
손안의 바보상자 덕에 생활은 참 안락해졌다. 모든 정보는 내 손안에 있다. 원조 바보상자는 TV였다. 그 ‘바보상자’라는 이름에는 수동성, 그러니까 반론할 방편 없이 받아들여 바보같이 길들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음이 느껴졌다.

인터넷과 웹은 괜찮은 대안이었다. 세계를 향해 내 목소리를 발신할 수 있고, 만나기 힘든 이에게도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네트워크를 타고 퍼져나갔고 동지를 불러낼 수도 있었다. 이 힘으로 정치와 사회가 움직인 사례도 적지 않았다. 손끝만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듯했다. 그런데 이 손맛을 본 이들은 더 편해지고 싶었다.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비즈니스도 더불어 커졌다. 내 생각을 담은 문서를 만들어 링크로 이어가는 대신 그냥 하트나 엄지를 꾹 눌렀다. 편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입력하는 대신 남들이 쳐다보고 있는 실시간 검색어를 같이 눌렀다. 역시 편했다. 이제는 누르는 것조차 귀찮다. 아래로 스크롤만 하면 무언가 정보가 계속 올라온다. 웹이란 위아래 양옆으로 종횡무진 서핑해 가는 것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앱 안에, SNS와 포털 안에 갇혀 버렸다.

URL도 몰라도 아니 아무것도 몰라도 폰 안에는 안락한 세계가 있었다. 마치 인터넷이란 이것이 전부라 말하는 듯했다. HTML이니 복잡한 기술 따위 몰라도 세상을 향해 발언한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게시판이나 단톡방은 편했다. 끼리끼리 돌려 보니 기분도 좋았다. 바로 이 맛에 쉽게 공유되어 바로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 나섰다.

클릭이나 좋아요가 곧 화폐인 세계에서는 제목 등 첫인상만이 점점 중요해진다. 콘텐츠의 느낌만 모아서 삼키기 좋게 섞어 제공하는 큐레이션 미디어, 속칭 스낵 미디어가 득세한다. 내용보다 껍데기가, 논리보다 키워드가 중요해진다. 정보가 나를 기분 좋게만 해준다면 링크를 찾아 들어가지도 의문을 품고 출처를 검색해 보지도 않는다.

우리 스스로 수고를 포기하니 안락해진 것이다. 하지만 편한 인스턴트에 중독되어 영양 불균형에 빠지듯이, 그 나태함에 삶의 밸런스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정보는 얼마든지 보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 판단하는 수고를 싫어하는 우리를 위해 이미 시스템은 편안한 정보만을 가져다주고 있다. 어느새 다른 시각과 낯선 관점은 거북해졌다. 나의 정의(正義)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극단만 남는다. 끼리끼리가 만든 착시에 빠져 내 생각이 곧 만인이 찬동하는 정의라고 확신해 버린다.

어느 시대보다 활자를 많이 읽게 되었지만, 그 활자라는 권위를 허락할 데스크나 출판사가 필요 없어진 시대. 그 시절에는 적어도 균형을 잡아야 할 사람에게 뭐라고 설명책임을 물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매체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무표정하게 불균형은 당신의 취향이라 이야기할 것이다.

가짜 뉴스는 늘 있었지만 창궐하지는 않았다. 선동과 충동이 진실보다 더 효과적인 탓이다. 사용자의 기분에도 시스템의 돈벌이에도. 진실은 거짓에 늘 이겼다. 혹은 이긴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 믿음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란 얼마나 무서운가. 이 믿음을 되찾는 법은 우리 스스로 더 느리고 불편해지며 우리가 정보를 골라 손수 연결하는 웹과 인터넷의 기본정신을 되찾는 길에 있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버린 바보상자 알고리즘에 이기는 길이다. 기계에 대한 인류 최초의 승리가 필요한 시점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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