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25 17:53
수정 : 2017.06.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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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소비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낮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통신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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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사회 취약계층·알뜰족 요금 줄이고
그 외 요금제 사업자 자율에 맡겨
월 1만1천원 인하 효과 있지만
이용자가 직접 요금제 옮겨야 해
실제 혜택 사용자 60%가량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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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소비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낮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통신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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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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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9일 내놓은 ‘통신비 절감 대책’ 보도자료에는 ‘국민이 적정 요금으로 기본적인 수준의 음성·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배적 사업자의 보편 요금제 출시를 의무화. (중략) 그 외 요금은 통신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인가권을 폐지’란 대목이 있다. 새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 방향을 내다보고, 이번 대책이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교감 속에 만들어졌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정부 대책을 보면, 새 정부는 사회 취약계층과 알뜰 사용자의 이동통신 요금을 줄여주는 대신 요금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요금은 시장에 맡겨두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모델을 본뜬 셈이다. 이번 방안이 시행되면 기초연금을 받는 65살 이상 어르신과 저소득층 가입자들은 오는 11월부터 이동통신 요금을 월 1만1천원씩 덜 내게 된다. 사실상 기본료 폐지와 맞먹는 요금인하 효과를 보는 셈이다. 이 계층 가운데 단말기를 잘 관리하며 오래 사용하고, 급한 경우가 아니면 무료로 제공되는 와이파이(무선랜)를 이용하며, 가끔 고객센터를 방문하거나 전화(국번 없이 114번)를 걸어 이용행태에 맞는 요금제를 쓰고 있는지와 할인을 못 받고 있는 것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챙기는 ‘알뜰 이용자’들은 이번 조처로 요금을 한푼도 안내거나 몇천원만 내게 될 수도 있다.
보도자료 가운데 인가제 폐지 부분은 통신비 인하 공약 이행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SKT)하고는 많은 대화를 나눴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추가 요금감면과 더불어 월 2만원(부가세 포함)에 음성통화 200분과 데이터 1GB를 기본 제공하고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보편 요금제 출시를 요구하고, 에스케이텔레콤은 다른 요금에 대한 인가권 폐지를 조건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요금 인가제 폐지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정부 발표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적어도 에스케이텔레콤은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 통신사 임원은 이와 관련해 “요금인하 요구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바로 수용하면 배임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언론에 대고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부 항목에 한해, 정부의 ‘양해’를 얻어 가처분 신청 등은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방안 시행에 따른 요금인하 효과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용자들의 행태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용자 스스로 자신이 요금감면·선택약정할인 대상인지를 살펴 신청하고, 싼 요금제를 찾아 옮겨야 통신비 부담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요금인하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예를 들어, 에스케이텔레콤이 보편 요금제를 내놔도 이용자들이 요금제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실제로 정부가 2014년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만들어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은 경우 다달이 요금을 20%씩 할인받게 했으나 아직도 대상자 가운데 1천만명가량은 신청을 하지 않아 혜택을 못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저소득층의 요금감면 비율도 저조하다. 국정기획위는 “이번 방안으로 요금을 월 1만1천원씩 더 감면받을 수 있는 어르신·저소득층이 584만명이나 되지만, 기존 신청률을 감안할 때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은 329만명밖에 안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자들이 선택약정할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요금감면 제도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으면서 개인정보 보호 및 이용자 선택 보장을 명분으로 반드시 본인이 신청하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요금감면을 받으려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저소득층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떼어다 제출하게 하고 있어 “창피 주기로 신청을 기피하게 하는 치사한 전략”이란 지적도 나온다. 기초연금을 받는 65살 이상 어르신들도 요금감면을 받으려면 이렇게 하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요금감면을 신청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수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더니 딱 그짝이다. 요금감면 절차를 ‘옵트아웃’ 방식으로 바꿔, 정부가 대상자 명단을 사업자한테 넘겨 일괄적으로 감면되게 하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사업자들이 ‘준비작업’을 이유로 요금 추가 감면 시행 시기를 늦추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지연시켜 보편 요금제 출시를 미루려고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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