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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9 21:20 수정 : 2017.07.05 00:47

【짬】 아이티벤처기업 스마트박스 나예룡 대표

스마트 박스 나예룡 대표가 서울시내 지하철역에서 서비스중인 사물인터넷함 ‘해피박스’의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요즘 부쩍 ‘4차 산업혁명’이 뜨면서 선두주자로 치켜들 주시지만, 4~5년 전 아이디어 하나로 나홀로 창업을 했을 때만 해도 ‘무모한 도전’이라고들 했지요. 사물인터넷(IoT)이란 용어도 일반화되기 전이었고, 벤처창업이 대부분 그렇듯 ‘맨땅에 헤딩하기’였으니까요. 초기 1년 남짓 기술개발 때는 ‘장기까지 팔 뻔한’ 고비를 겪었죠.”

서울 지하철역마다 있는 사물함(로커)을 ‘사물인터넷함 해피박스’로 변신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이티(IT)벤처 ‘스마트 박스’의 나예룡(45) 대표는 “솔직히 그동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스마트 박스 서비스는 한마디로 무인택배 시스템이다. 구매자가 온라인이나 모바일 홈페이지에서 배송지를 ‘테이크아웃-로커배송’ 등으로 선택하고 원하는 지하철역을 지정하면, 택배기사가 해당 역의 ‘해피박스’에 물건을 배달한 뒤 휴대폰 문자로 전송해주는 ‘지하철역 이름, 보관함 번호, 비밀번호’를 받아 찾아가면 된다. 물건을 받거나 반품을 위해 시간 맞춰 택배기사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특히 분실이나 사생활 노출에 따른 사고 우려가 높은 다세대나 원룸 등 1인 가구에 맞춤한 서비스다.

5년전 ‘원룸 여성 택배 사고’에 착안
사물함-휴대폰 연결 ‘사물인터넷함’으로
“퇴직금에 아파트까지 팔아서 버텼죠”
지하철역망 활용한 ‘해피박스’ 대성공

일본 지하철 올해 안 시범서비스 시작
중국도 ‘고속철도 이용’ 양해각서 맺어

“그 무렵 온라인 쇼핑시장이 급증하면서 업체들은 물류 서비스와 비용 절감 고민이 많았어요. 또 한편으론 ‘혼자 사는 여성’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택배 관련 범죄 뉴스도 심심찮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을 활용한 무인 택배 서비스 아이디어를 착안하게 됐죠.”

한양대 공대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한 그가 2000년부터 10여년간 모바일 음원 제공 서비스 관련 아이티업체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2013년 퇴직금 등으로 5천만원의 자본금을 마련해 창업을 한 그는 맨 먼저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유럽 시장에도 진출할 것을 대비해 ‘스마트 박스’ 상표 등록부터 해놓았다. 하지만 고교 후배 1명을 영입해 실제 적용 가능한 상품으로 개발하기까지 1년 넘게 계속 투자가 필요했다. 결혼 등에 대비해 장만해 놓았던 소형 아파트를 비롯해 전 재산을 털어 버텨야 했다.

“그런데 진짜 힘겨운 고비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뒤였어요. 설명을 다 듣고 나면 ‘멋지군요. 훌륭한 제품이에요’ 하면서도 마지막엔 한마디, ‘그런데 어디 설치되어 있죠?’라고 묻더군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발명품인데 ‘레퍼런스’가 어디에 있겠어요?”

예나 지금이나, 정부에서는 벤처·중소기업의 제품을 적극 지원하라고 외치지만, “공공기관의 벽은 철옹성 같아” 말단 담당자나마 쉽게 만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바로 그때, 뜻밖의 기회가 왔다.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다. 2015년 시범서비스를 통해 검증을 해본 뒤 성과가 좋아 153개 역사 전체에서 본사업으로 확대됐다. 비로소 ‘스마트 박스’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때마침 이달 초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를 23년 만에 통합한 ‘서울교통공사’(사장 김태호)가 공식 출범했다.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물류망으로 활용하는 무인택배 서비스의 강점은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업체와 구매자들이 얻는 편리성은 기본이고, 65살 고령 인력을 포터로 고용하는 일자리 창출 효과, 물류혁명에 따른 비용 절감과 대기오염 저감 효과 등등. 안전성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까닭에 ‘중고나라’ 같은 개인간 물품 거래에도 유용하고, 심지어 외국 여행객들도 호텔과 공항을 연결한 짐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경비인력이 없는 아파트단지에서 현관마다 스마트 박스를 설치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지금 가장 핫한 아이템은 ‘공중전화박스 재활용 서비스’ 안이에요. 전 국민 휴대폰 시대를 맞아 사실상 무용지물이지만 비상보안용으로 폐기할 수도 없는, 전국 3만5천개의 공중전화박스에 스마트 박스를 설치하면 지역주민 공동 택배망으로 유용하지 않겠어요?”

무엇보다 ‘아이티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의 서울 지하철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라는 ‘레퍼런스’는 수출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애초 겨냥했던 대로 ‘철도 만능국’ 일본과 새로운 ‘철도 강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에서 동시에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에요. 일본전기(NEC)와는 2~3년 전부터 협의를 해왔고 오는 9월께 본계약을 맺어 지하철역과 맨션 등에서 서비스할 예정이고요. 중국에서도 이달 중순 경교과기발전유한공사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올해 안에 고속철도망을 이용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는 시범사업 단계에서만 각각 50억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고, 앞으로 최소 3년간 각각 1천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2명이던 직원은 20여명으로 늘어난 상태이고, 계속 충원을 계획하고 있다.

“무인택배 서비스의 ‘최초’로 인정받았으니 이제 ‘최고’가 목표입니다.”

나 대표는 ‘재작년 일본 대기업과 예정된 미팅 때문에 장례식마저 지키지 못했던 부친의 영전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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