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9 15:23
수정 : 2017.08.29 20:43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아는 형님’에게 카톡을 했다. “형님,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업체를 인수합병 못 하고 있다는데요?”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등 잔뼈가 굵은 이분은 한 누리집 링크를 보내줬다. 삼성전자의 벤처투자 부문인 ‘삼성벤처’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 목록이었다.
목록을 보니 삼성벤처는 지난달엔 사물인터넷·자율주행차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각인식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반도체·전자 업체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했다. 또 5월에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에 1300만달러를, 4월에는 네트워크 업체에 3750만달러를 투자했다. 삼성벤처는 올해 6곳 등 모두 115개의 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아는 형님은 “삼성전자가 인수를 안 하고 있을 뿐이지 꾸준히 인공지능 업체에 투자를 하고 지켜보고 있다”며 “최근에도 삼성전자가 인공지능을 담당할 인력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총수가 없어서 투자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29일 보수언론들은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에 있어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데 손을 놓고 있다는 기사를 내놨다. ‘구글·애플, 인공지능 기술·인재 빨아들이는데 삼성은 속수무책’, ‘라이벌 IT기업, 인공지능 기업 싹쓸이’ 등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는 ‘아우성’이었다.
미국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을 운영한 바 있는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삼성엔 손영권(삼성전자 전략담당 최고책임자), 데이비드 은(삼성넥스트 사장) 같은 거물들이 있는데 이들은 투자를 자신의 재량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기업들은 경쟁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인수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은 사장은 올 초 미국에서 18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본사도 열심이다. 28일엔 커지는 수요에 대비해 중국 시안 반도체 라인 증설에 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5월엔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 임원이 모여서 ‘2020년 비전’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하만 인수(80억달러)처럼 대형 인수합병을 하는 것은 과정이나 결정 단계 모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더십 공백 때문에 삼성이 얼어붙었다는 것은 과도한 우려다. 뒤집어서 총수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 한다면 그런 경영구조를 만든 것도 문제다. 이재용 부회장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재판 대응 전략에 이어, 삼성마저도 경쟁에서 뒤지는 기업으로 포장해 불확실성을 높일 것인지 묻고 싶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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