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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9 15:25 수정 : 2017.08.29 17:09

#‘허세’ 이재호 기자의 ‘이상’스러운 싸이월드 탈퇴기

‘촌스러운 비니로 눈썹까지 덮고 씨익 웃는 저 아해는 누구냐. 왜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턱을 18도 가량 들고 있느냐. (훗날 이 사람은 거북목 증후군에 시달리게 됩니다.) 왜 기분 나쁘게 눈은 내리깔아 보느냐.’

기억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잊고’ 싶은 기억과 ‘간직하고’ 싶은 기억 두가지로 나눈다지만 흐르는 시간과 변화무쌍한 마음을 변수로 입력하면 기억방정식은 조금 복잡해진다. 당장에는 기억하고 싶지만 언제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 지금 당장엔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꺼내보고 싶은 기억 등. 내게 ‘싸이월드’는 그 중에서도 완전히 잊은듯 살다가 죽기 전에 딱 ‘한번만’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었다.

#저장과 삭제사이

지울 수가 없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블로그 모두 비공개로 둔지 꽤 됐지만 딱 한번은 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에 차마 삭제를 누르지 못했다. 사진과 글을 ‘찌르레기’ 폴더에 넣고 지워야지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우클릭’ 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이어리의 글들을 긁어서 메모장에 붙이려는데 미간이 움찔움찔 하면서 눈 두덩이에 열이 올랐다. 침대로 달려가 메시급 이불킥을 시전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우∼ 스튜핏!”

장아무개 배우의 허세 가득한 싸이월드 글을 보고 비웃었던 행위는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구나. 이렇게 자기 성찰이 가능한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인가…‘저장’과 ‘삭제’ 사이의 크레바스는 깊었다.

#싸이월드와 인공지능의 불편한 조합

그런데 싸이월드 탈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한 소식이 들렸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가 싸이월드에 수십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모바일 인공지능인 ‘빅스비’에 싸이월드의 데이터를 활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불안했다. 살면서 딱 한번만 보고 싶은 기억이 제멋대로 나오는 것도 불편한데, 인공지능(?)이라는 생경한 녀석과 친해지는 건 예측 가능성을 ‘제로’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탈퇴를 굳게 결심했다.

싸이월드 메인화면 갈무리
#탈퇴 감행 첫날

싸이월드를 탈퇴하려 로그인을 했더니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향집을 떠나는 것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엇! 그런데 싸이월드가 블로그와 미니홈피 게시글·사진을 피디에프 파일 형식의 ‘전자책’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생겼다. 전자책이 아닌 진짜 ‘책’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살면서 딱 한 번 볼건데 싸이월드의 기억에게 물리적 실체를 부여하고 싶지가 않다. 넌 그냥 가상의 데이터로만 존재해주면 고맙겠어.

게시물 개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700여개의 게시물이 있었던 내 전자책은 1만원 안쪽이었다. 저렴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보전하는 가격으로 지불할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따로 제작·구매해야 하는 건 불편했다. 사진첩, 다이어리 등등 전자책으로 제작할 콘텐츠를 클릭하고 결재했다. 계산을 마치니 ‘전자책 제작에 하루 정도가 소요된다’는 글이 떴다.

‘오늘 탈퇴할 수 없답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된 기분이었다.

싸이 전자책 제작 관련 가격표

#탈퇴 감행 이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전자책이 제작됐다는 공지를 받고 접속했다. 전자책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물론 열어보지는 않는다. 자~ 이제 싸이월드와 이별을 하자. 엇… 그런데 탈퇴가 안된다. 싸이월드에서 ‘클럽장’으로 등록돼 있는 클럽이 있으면 탈퇴할 수가 없단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땐 아니었다.

클럽장을 양도하지 않으면 탈퇴할 수 없다.
클럽 리스트를 열었다. 뭐가 많다. 학교생활, 음악, 사진, 여행 등 취미와 관련된 클럽들이었다. 내가 클럽장인 클럽 개수도 제법된다. 대학생때 활동했던 각종 동아리, 조모임, 학회의 흔적들이다. 단독으로 클럽장인 경우에는 클럽 회원들을 강제로 탈퇴시키고 클럽을 삭제하면 됐다. 하나 둘 모임을 지운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대학 기숙사 소모임 클럽에서 문제가 생겼다. 공동 운영진이 있는데 강제로 탈퇴 시킬 수가 없었다. OTL

공동 운영진에게 클럽을 양도해야 탈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를 찾는데 연락처가 없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연락처를 찾았는데 가운데 숫자가 3자리다. 불안하다. 역시 연락이 안됐다.

슬슬 교감신경이 반응하면서 짜증이 밀려온다. 홈페이지 질의응답 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너무 탈퇴가 하고 싶은데, 하나의 클럽을 지울 수가 없어서 탈퇴를 못하고 있어요. ㅜㅠ 제발 클럽 좀 지워주세요. 아니 탈퇴 좀 시켜주세요.’

#탈퇴 감행 사흘

자정이 넘었다. 몇시간째 응답이 없다. 신경질적으로 이것저것 ‘광클’(미친 클릭)을 했다. 클릭 순서를 기억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 공동 운영진의 계급을 평민으로 낮출 수 있었다. 클럽을 없애기 위해 독재자가 된 기분은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금방 클럽 삭제를 꾸욱 눌렀다. ‘클럽이 삭제됐습니다.’

“오오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드디어 싸이월드를 떠날 수 있겠구나.

싸이월드 탈퇴 화면.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굳빠이 싸이월드

땃 따라닷∼ 따라닷∼ 따따… 쿵짝짝. 영화 타짜에 나왔던 아귀의 멜로디는 왈츠풍의 삼박자였다. 송대관 아저씨는 네박자를 찬양했다지만 역시 삼박자가 신난다. 삼일 동안 정말 힘겨웠다. ‘잘! 가! 라!’ 이제 정말 작별이다. 웅? 그런데 회원 탈퇴 마지막 페이지에서 오류가 떴다. 새로고침을 눌러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다시 초기화면으로 가서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하는데 로그인이 되지 않는다. 탈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오랜 연인으로부터 제대로 된 이별의 문장 없이, 강제 이별을 당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금방 뿌듯함이 몰려왔다. 내 20대의 난제였던 싸이월드를 정리했다. 싸이월드의 기억은 앞으로 딱 한번만 꺼내 볼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 정말, 트룰리, 이별의, 순간의, 모먼트다. 아디오스 싸이월드. 굳빠이!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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