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7 15:00
수정 : 2018.04.17 19:28
|
황창규 케이티 회장이 17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서대문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새노조 성명 내어 “자진사퇴 결단” 촉구
불명예 퇴진한 전임 CEO들의 사례 들어
한 사외이사 “경찰 소환조사 분수령” 전망
정관에 ‘금고 이상 형 확정 시에만’ 반박도
“구속되면 몰라도 기소돼도 사퇴 안할 듯”
|
황창규 케이티 회장이 17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서대문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황창규 케이티(KT) 회장이 17일 오전 ‘상품권 깡’과 임원 이름의 쪼개기 방식을 통해 국회의원 90여명에게 4억여원의 정치자금을 불법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케이티 안팎에서 황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공방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남중수 전 사장과 이석채 전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시점에서 사의를 표명한 전례를 들며 “회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관에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사 자격이 유지되게 돼 있는 점을 들어 “사퇴 주장은 말이 안된다”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케이티 새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민영화 이후 지금껏 불명예 퇴진한 모든 시이오들이 사법기관 소환에 이르러 자진 사퇴를 했다. 국민기업 케이티 수장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이자, 전 국민을 고객으로 하는 통신업의 특성상 버티면 버틸수록 회사가 심각하게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창규 회장은 유독 막무가내로 버티기 하고 있다. 이제라도 황 회장은 케이티를 위해,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 맞게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 회장 사퇴 촉구 목소리는 이사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케이티의 한 사외이사는 최근 <한겨레>와 통화에서 황 회장의 퇴진 여부 및 시점과 관련해 “경찰 소환 조사를 받는 게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불명예 퇴진한 전임 시이오(CEO)들도 모두 검찰 소환조사를 앞뒀거나 압수수색을 계기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의 자진퇴진 촉구를 반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케이티의 한 임원은 “정관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유예됐을 때만 이사 자격이 박탈된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아직 기소도 안됐는데 사퇴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 임원은 전임 시이오들이 경우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임 시이오들의 혐의는 배임·횡령·뇌물이었고, 황 회장은 불법정치 자금 제공 혐의인데다 아직 직접 줬거나 지시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케이티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이전 시이오의 경우에는 검찰 소환조사였고, 이번에는 경찰 소환조사다. 메시지 강도가 다르다. 하나은행 등 최근 다른 사례를 통해 버티면 어쩌지 못한다는 것도 봤다. 내부 분위기로 볼 때, 황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몰라도 불구속이면 기소가 돼도 자진사퇴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앞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황창규 케이티 회장은 이날 오전 9시32분께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했다. 황 회장은 경찰청사 앞 대기중이던 취재진에게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이 “정치자금 지원에 대해 보고받은 바 있느냐”, “직접 지시했느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날 경찰청사 밖에서는 케이티 민주화연대가 집회를 열어 황 회장을 구속수사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케이티 임원들이 옛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이른바 ‘상품권 깡’ 등을 통해 조성한 자금을 정치 후원금으로 기부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케이티 쪽이 기업 단위 정치 후원금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임원 명의로 ‘쪼개기 후원’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케이티 쪽의 불법 정치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은 90여명에 달하고 규모도 4억3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황 회장은 사전에 이런 쪼개기 후원에 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지시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는다. 앞서 경찰은 케이티 사옥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품권 지급 현황 및 회계 자료 등을 입수하고, 전·현직 임직원을 차례로 불러 조사해 왔다. 경찰의 황 회장 소환은 관련 증거 자료와 진술 확보 등 ‘혐의 다지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재섭 허재현 기자
js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