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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30 19:48 수정 : 2018.07.31 07:49

주52시간 이후 풍속도
일 남았으면 승인 받아야
“아직까진 초과근로 해도
눈치주는 분위기는 없어”
일부선 지난달 넘긴 시간
이달에 일한 걸로 올리기도
발주자가 주52시간 넘는
근무 요구하면 거절 못해
“노동시간 어기면
발주자에도 책임 물어야”

정보통신기술(ICT) 회사에 근무하는 ㄱ씨는 지난 27일 오후 업무용 컴퓨터(PC)가 꺼졌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에 따라 선택적근로시간제를 도입한 ㄱ씨 회사는 한 달에 근무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두고 이를 넘기면 더는 일을 할 수 없도록 컴퓨터를 꺼버린다. 이번 달 근무일 22일에 하루 근무시간 8시간을 곱한 176시간이 법정 노동시간 상한선이었는데, ㄱ씨는 이틀 반나절을 앞두고 근무시간을 채워버린 것이다. 이후부터는 대체휴가를 내거나 부서장의 초과근로 승인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다.

ㄱ씨는 30일 <한겨레>에 “남은 업무가 있어서 초과근로를 신청했다”며 “그래도 연장근로수당 다 받으며 일할 수 있어서 좋고, 아직 초과근로에 대해 눈치주는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 뒤 첫 월말이 다가오면서 ㄱ씨처럼 업무용 컴퓨터가 꺼지는 경험을 하는 직장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노동시간 감축이 만들어낸 ‘신풍속도’다.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엄격히 통제하고, 법정 노동시간을 넘기면 아예 일을 못하도록 하는 ‘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통합(SI) 업체도 지난 23일까지 160시간 이상을 근무한 직원들에게 별도의 알림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는 “이번 달 최대 근로 가능시간은 229시간으로 모두 근무할 경우 사내 시스템 접속과 출입이 제한되니 근로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 7월 중 업무를 모두 마무리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덩달아 피시 오프 시스템에 초과근로 승인 결재 등을 접목한 비즈웨어를 납품하는 회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공공·민간기업에 이런 비즈웨어를 납품하는 제이니스 관계자는 “300인 이상 기업은 물론이고 300인 미만 기업들도 사전준비 차원에서 문의가 들어와 지난해에 견줘 문의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회사별로 도입하고 있는 선택적근로시간제·탄력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제 유형에 따라 시스템을 조금씩 수정해서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갖춰놔도 늘 ‘구멍’은 있게 마련이다. 곧 새로운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게임업체 개발자 ㄴ씨는 ‘크런치모드’에 시달리고 있다. ㄴ씨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라고는 하지만 팀별로 움직이다 보니,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데 혼자 퇴근하기 어려워 근로시간 다 채우고 대체휴가 쓰고 나오는 직원도 있고, 6월에 넘긴 시간을 7월에 일한 것으로 올리라는 경우도 있었다”며 “미리 계획을 잘 짜면 일정대로 게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가 아직 이런 관리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하청 ‘갑을’ 관계에 있는 경우, 을만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지난 19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보기술(IT) 기업과 가진 노동시간 단축 관련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발주자의 갑질을 없애달라”고 건의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한 업체 대표는 “갑을 관계에서 고객이 요청하는데 (주 52시간을 넘어서는 근무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다. 노동시간을 어기면 대표이사가 처벌받게 되는데 발주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대표도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은 노동자나 사용자의 문제가 아니라 발주자의 문제”라며 “발주자가 (노동시간 단축·준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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