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6 22:07
수정 : 2018.09.16 22:13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구글의 지메일은 정식 서비스를 하지 않지만 ‘실험실’을 두어, 흥미로운 기능을 이용자들이 사용해보도록 했다. 그중 하나는 메일을 보내려면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기능이었다. 한 밤에 취한 상태에서 감정적인 이메일을 보내고 이튿날 후회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도록 메일 발송 전에 ‘이성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하려 한 것이다. 구글의 개발자는 낯뜨거운 메일 발송을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이용자들의 호응은 거의 없어 이내 사라졌다.
2011년 미국에서 사진 공유 앱으로 출발한 스냅챗의 특징은 주고받은 사진이 즉시 삭제되는 기능이다. 스냅챗은 사진과 글이 수신 후 10초 안에 사라지도록 해, 기록에 대한 불안 없이 솔직한 사연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으로 청소년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지난해 뉴욕증시에 기업 공개 직후 38조원대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제2의 페이스북으로 주목받았다.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을 통한 디지털 소통은 기존에 글과 목소리로 사연을 주고받던 아날로그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하다. 동시에 같은 장소에 있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사라진 비동기적 소통이 가능하다. 또 대화와 소통 내용은 기억하지 않아도 시간 순으로 자동으로 기록·저장된다.
하지만 지메일과 스냅챗 사례에서처럼 생각나는 대로 바로 메일을 보내거나, 모든 대화 내용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자메시지가 음성 대화와 편지를 대체하며 일상적 소통 도구로 자리잡았지만, 디지털 소통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해온 일상적 대화 습관과 거리감이 크다.
카카오톡은 최근 다음 업데이트 때 ‘메시지 전송 취소’ 기능을 추가해, 상대가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는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메신저 라인은 지난해 12월부터 메시지 취소 기능을 도입했고, 텔레그램도 메시지 발송 취소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는 사람이 설정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에서 사람이 기계의 기능과 설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는 현실을 풍자했다. 우리는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럴수록 기계에 맞추기보다 사람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기계의 기본적 설정(디폴트 세팅)을 고민해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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