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공그라운드에서 최근 평양에 다녀온 이재웅(왼쪽) 쏘카 대표와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인터뷰] 북 다녀온 벤처 1세대
이재웅 본부장-장병규 위원장
이재웅 기재부 혁신성장본부장
“북, 블록체인·암호화폐 용어도 사용
이동 자유화 땐 모빌리티 분야 유망
에스토니아처럼 스타트업 육성 고려
남쪽 자본-북쪽 싼 노동력 구조 바꿔야”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날 보고 새 시대 사람이라 말해
경제·인력역량 어느 정도는 있다
ICT 협력하려면 정보 접근 필수
기업인·연구원 방북 기회 늘려야”
|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공그라운드에서 최근 평양에 다녀온 이재웅(왼쪽) 쏘카 대표와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블루홀 이사회 의장)은 이재웅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장(쏘카 대표)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격의 없는 친밀한 말투였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창업해 성공한 ‘벤처 1세대’이자,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엔젤 투자’ 회사를 함께 만들고 운영했다. 둘은 이번 정부 들어서는 ‘혁신성장’ 정책 추진의 핵심 직책을 맡았고,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북한을 다녀왔다.
두 사람의 방북은 남북 대화가 끊긴 10년 사이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4차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된 세계경제의 시대 변화를 상징한다.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방북한 기업인들은 4대 그룹 총수 등 재벌 관계자 일색이었다. 지난 18일 북한 리룡남 내각 부총리는 수행단 소속 기업인 17명과 면담할 때 장병규 위원장의 인사를 듣고 난 뒤 “새 시대 사람이로구먼”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공공그라운드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나 방북 소감과 남북 경제협력 전망을 들었다.
‘정보 부족’ 현실론 대 ‘변화 속도 빨라’ 낙관론
북한은 2000년대 초부터 ‘단번 도약’ 발전 전략을 주창하며, 정보통신기술 분야 인력 양성 등에 역점을 뒀다. 문재인 정부가 힘을 주는 4차 산업혁명은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두 사람은 “북한의 모든 지역을 보거나 다양한 시민, 기업인들을 만나지는 못했다”면서도 ‘북한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방북단이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봤다 하더라도, 그 부분이 준 인상은 경제·건축·인력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춘 듯했다. 앞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장병규) “북쪽 사람들 스스로 ‘숙련공 위주로 한 산업은 따라잡을 수 없다, 정보통신으로 단번에 따라잡을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더라. 미래과학자거리 같은 걸 보면, 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 변화와 투자 의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현장에서 만난 북한 사람 중에는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도 ‘블록체인’이나 ‘크립토커런시’(암호화폐)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등 관련 지식이 많은 이도 있었다.”(이재웅)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북한과 구체적으로 협력 가능한 사업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등 남북 경제협력 전망을 구체적으로 묻자, 서로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장병규 위원장은 “사업을 하려면 전체를 보고 해야 하는데, ‘카더라 통신’에 의한 정보가 대부분이라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나는 현실주의자, (한 손으로 이 본부장을 가리키며) 선배님은 낙관주의자”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과거에 했던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지만, 정보통신 분야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가들에게 정보 접근권을 주고 ‘너네 알아서 해’라고 하는 게 혁신의 기본인데, 그게 언제쯤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장 위원장은 “이번 수행원에 포함된 건 일단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가서 보고 듣고 배우라는 의미, ‘저 사람은 대통령과 같이 온 사람이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남북 간 커뮤니케이션 고리로 역할하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였다”며 “특정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자료가 거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웅 본부장은 ‘변화의 속도·의지’에 더 중점을 뒀다. “대통령의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을 보면서 지금은 제한적 정보를 정부가 쥐고 있지만, 물꼬가 확 트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연설을 들은 북한 사람이 집에 가서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상상해봤다. ‘이제 평화의 시대다, 너는 앞으로 기업가를 해라’ 이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은 가장 충격적인 얘기였다.” 사회변화를 이끄는 혁신기업가들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도 봤다. “혁신기업가 역할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거다. 대기업들도 창업자들이 혁신가여서 처음 태어난 것처럼, 그런 역할을 남북 경협에서 혁신기업가들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교통·배달 등 모빌리티 분야에서 혁신 기업들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장병규 위원장도 북한의 개방 의지를 높이 샀다. “북한이 디지털카메라 촬영을 허용해줬다. 방북 전에 ‘북쪽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가져가서 사진을 무단 삭제할 수도 있다’고 교육받았지만, 북한 쪽이 굉장히 많은 정보를 오픈하려고 한다는 느낌이라 놀랐다.”
이재웅 본부장은 북한이 베트남과 에스토니아처럼 기업가 정신을 독려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꾸리고자 한다면 남북 정보통신 경협이 더 원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인 에스토니아는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직후 정보통신기술 인재 양성에 집중했으며, 독립 당시 1인당 국민소득 2천달러에서 지난해 1만9천달러로 성장했다. 인터넷 전화회사 ‘스카이프’ 등 유명 스타트업이 에스토니아에서 창업해 세계로 진출했다. “북한이 북베트남과 에스토니아 같은 방향의 변화에 의지를 갖고 있으면 (정보통신 경협이) 먼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우리나라부터 혁신성장 잘 일궈야”
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부터 혁신성장 잘해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한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뒷받침돼야 북한과의 ‘혁신적’ 경협도 가능해진다는 취지에서다. “국가가 계획하고 생산요소를 투입하면 성장이 일어날 거라는 과거 경제성장 프레임과 달리, 혁신성장은 개인을 존중하는 분위기, 개인의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한국 경제도 아직 시도하는 단계라서 경험이 부족하다.”(장병규) 두 사람은 북한을 ‘인력 하청 공장’으로만 이용하기보다, 미래 경제를 위해 현재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함께 돌파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데도 공감했다. “아직 한국 경제도 대기업 위주이고, 남북 경협이 시작되더라도 저임금 숙련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자본을 대어 북한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 대신 새로운 바람직한 협력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혁신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가능할까의 문제에 대해 남북한 모두 열심히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이재웅)
두 사람이 우리 정부에 바라는 점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더 이끌어서 기업가와 소비자에게 필요한 객관적이고 진실된 정보가 늘어날 수 있도록, 남북 간 접점을 대폭 넓혀달라”는 데로 모였다. 불확실성이 제거된 상시 교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중견기업 2·3세대들이나 연구원들이 북한에 직접 가는 일이 늘어나야 정보가 쌓일 수 있다. 정부 부처 장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체계화·명료화되지 않은 북한의 지식을 제대로 정리정돈 해서 많이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장병규) “방북 경험을 나누려고 스타트업 단체와 자리 마련을 협의 중이다. 또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함께 고민하는 소셜벤처 인재들이 북한에 직접 가서 많이 보면 좋겠다. 새로운 형태의 기업에 맞는 새로운 협력 형태에 대한 연구·고민이 선행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이재웅)
김효실 박태우 기자 trans@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