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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1 18:19 수정 : 2018.10.02 10:39

그래픽_장은영

[IT업계 노조 설립 바람…지회장 3인 방담]

그래픽_장은영
이들은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었다. 20여년 전 지금은 경영자들이 된 벤처 1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서 ‘덕질’을 했고, 이를 밥벌이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도, ‘업’의 결과물은 때때로 부끄러워졌고, 삶의 질은 나빠졌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노동조합이었다.

<한겨레>는 지난달 13일 최근 잇따라 노조를 설립한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 오세윤(36) 지회장, ‘넥슨노조 스타팅포인트’ 배수찬(33) 지회장, ‘스마일게이트 에스지(SG) 길드’ 차상준(35) 지회장을 만났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산업의 미래와 그 안에서 노동자, 노조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각자 어떻게 업계에 몸담게 됐는지,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다들 ‘성덕’이신가?

오세윤 네이버지회장(이하 네이버) 프로그래밍을 좋아해서 컴퓨터공학과에 다녔고, 대학원을 거쳐 스타트업에 다니다가 3년 전 네이버에 입사했다. 스포츠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마침 ‘네이버 스포츠’ 페이지에서 사람을 뽑았다. 하고 싶은 일 하는 셈이다.

배수찬 넥슨지회장(이하 넥슨) 12살 때 내 업은 게임이라고 생각해 게임을 만들기 위한 모든 것을 했다. 그림, 시나리오, 수학 공부까지 했다. 대학 시절 1인 개발을 하다가 넥슨에 입사해 8년 됐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에서 먹고 자는 일종의 ‘사축’(회사가 기르는 짐승)이었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이하 스마일) 중학생 때 게임 개발을 시작해 프로게이머도 잠깐 했고, 음악(드럼 연주)도 전문적으로 잠깐 하다가, 스타트업에서 게임 기획 일을 시작했다. 2011년에 스마일게이트에 입사해, 지금은 ‘크로스파이어’라는 게임의 무기를 담당한다. 새 서비스 준비 때문에 요즘 ‘크런치 모드’다.

지난달 13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에서 ‘넥슨노조 스타팅포인트’ 배수찬(33) 지회장(왼쪽부터), ‘네이버 사원노조 공동성명’ 오세윤(36) 지회장, ‘스마일게이트 에스지(SG) 길드’ 차상준(35) 지회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네이버 사원노조 제공

“게임회사는 일종의 점조직”
“마주쳐도 인사 잘 안해”
“노조 이후 인사 문화 생겼다”

-사실 네이버 서비스나 게임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개발자들의 삶이 어떤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스마일 우리 회사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를 찍었다. 드라마에서 정해인은 능력있는 개발자로 나오면서 연애도 하지만, 사실 그럴 시간이 많지 않다. ‘크런치는 안하고 연애를 하고 있네?’ 게임회사는 일종의 점조직처럼 돼 있다. 하나의 게임을 개발하는 스튜디오가 있고, 그 스튜디오 안에 프로그래밍·그래픽·디자인·음향 등등 여러직군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스튜디오에서 누가 뭘 하는지도 잘 모른다.

넥슨 직원들끼리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하고, 개인 단위로 움직인다.

네이버 우리도 별로 인사를 안했는데, 노조가 생긴 이후 조합원에게 사원증 목걸이와 머그컵(이를 ‘공동성명 굿즈’라 부른다)을 나눠줬다. 그 뒤로 조합원들끼리 인사하는 문화가 생겼다.

“노조 설립하자 가입 폭발적”
“절반 정도가 아이 있는 분들”
“정규직도 권고사직 숱해”

-누군지도 모르고, 별로 친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노조에 가입하나?(각 노조는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진 않았으나 직원 과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근접해 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4월에 노조 설립 뒤 가입이 폭발적이었다. 수직적 문화나 평가의 불투명성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가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7월 노동시간 단축 때 노조가 유연근로제 대응을 잘해 직원들에게 믿음을 줬던 것 같다.

넥슨 우리는 고용불안이다. 가입자 절반 정도가 아이가 있는 분들이다. 이제는 더이상 ‘잘리면’ 안되는 분들이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입한다. 개발하던 게임 프로젝트가 끝나면 전환 배치를 신청받는데, 30% 정도는 갈 곳이 없다. 대기발령으로 있다가 못버티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일 정규직은 정년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프로젝트가 없어지면 ‘권고사직’ 형태로 내보내는 일이 숱하다. 그러면서 프로젝트가 왜 깨졌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노동자들의 능력을 탓하는 경우도 있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노동자가 지라는 식이다. 최근엔 게임 시연을 마치고 포상회식까지 했는데 프로젝트가 깨져 사람들이 권고사직됐다. 치욕스러운 일인데, 게임업계는 ‘이번에도 당했네’하고 순응해왔다.

넥슨 그게 자기 탓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다. 회사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홍종찬(32) 넥슨노조 스타팅포인트 수석부지회장이 경기 성남 넥슨 사옥 앞에서 노조가입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노조 홍보물에 있는 큐아르(QR) 코드가 눈에 띈다. 넥슨노조 제공

“평가·보상 투명한 기준 없어”
“인센티브 받아본 적 없고”
“실패에 대한 기여도 인정해 달라”

-그런데 성과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고, 정보기술·게임업계는 원래 이직도 잦다는 평가도 있는데.

네이버 본인이 이동하는 거랑 떠밀리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네이버는 분사를 비롯한 조직개편도 잦아, 그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최근 컴퍼니인컴퍼니(CIC)를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자칫 사내 경쟁만 강화하고, 협업은 뒷전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어떻게 직원들을 평가하고 보상하는지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넥슨 게임회사도 게임의 장르에 따라 자회사를 여러 개 둔다. 매출이 안나오는 회사는 접을 수도 있다. 게임을 10개 만들면 1개가 성공할까 말까인데, 그룹 전체로 보면 흑자지만 실패한 자회사는 적자다. 같은 노동자고 같은 일을 하는데, 노동자를 쪼개 놓고 있다. 입사한 이후로 인센티브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스마일 정보기술 업종은 사람이 중요하다. 실패했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 한국 게임이 노잼(재미가 없다)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과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회사 슈퍼셀은 실패를 하면 회사 전체가 축제를 한다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내보낸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실패에 대한 기여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가 생긴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을까? “노조를 만들어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데?”라는 동료들이 질문에 뭐라고 답하나.

네이버 무엇보다 사내 게시판에 회사가 공지를 했을 때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사안에 직원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 단체협약은 맺지 못했지만 불합리한 제도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건강검진 당일도 공가처리하게 됐고, 콜센터를 담당하는 계열사인 컴파트너스 등에는 조회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

넥슨 우리는 ‘투자와 보험’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노조를 가입해 얻게 된 (노동조건 개선 등의) 성과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간다. 또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노조가 지켜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험이다. 지금 노조 운영진(집행부)이 개발자 위주이긴 하지만, 큐에이(QA·게임 테스트)나 콜센터 등 다른 직군의 이야기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만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한분한분 찾아뵈려고 한다.

스마일 ‘캐릭터가 어디에 끼었어요. 아이템이 사라졌어요’ 같은 고객응대를 맡으신 분들이 굉장히 힘이 들고 고충이 많을텐데, 점 조직 형태의 조직문화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안되고, 그런 이유로 직군 간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노조에서 이런 이야기들 많이 듣고 싶다.

네이버 사원노조가 조합원에게 나눠준 사원증 목걸이와 머그컵, ‘공동성명 굳즈’. 네이버사원노조 제공
-정보기술(IT)업계에서 처음 생긴 노조다 보니, 활동방식도 남다를 것 같다.

스마일 노조 처음 공개하면서 ‘브랜딩’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우리 누리집에 고양이가 나오는데, 노조활동도 즐겁고, 편안하고, 재밌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네이버 노조가 보내는 메일이 ‘업무상 메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체메일을 못보내고 있다. 사내 시스템에 게시판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아직까지 확답이 없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계열사 찾아다니며 종이 홍보물을 돌리고 있다.

스마일 네이버가 온라인 게시판 만드는 회사 아닌가?

네이버 그러게 말이다. 최첨단 기업이 노조를 대하는 태도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노조는 회사의 파트너로서 재밌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고 싶다. 회사로서도 나쁠 게 전혀 없다. 노조는 단체교섭 과정에서 사외이사 추천권을 달라고 했지만, 회사에선 반대하고 있다. 현재 사외이사들은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셀프추천’인데다, 대부분의 사안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

“선배들 고맙고 미안하다 해”
“우린 언제까지나 회사를 사랑”
“회사의 주인공으로 대해줬으면”

-지금 경영진은 업계 1세대들이고 노조를 만든 사람들은 2세대들이다.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스마일 노조 가입하는 선배들 가운데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노조에 가입한 선배들은 자신들이 당한 부당함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노동환경이 나빠진 것이라는 미안함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경영진이 된, 백전노장 선배님들에게 노조를 통해 후배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선배님이 잘 들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네이버 선배님들이 없었다면 네이버가 시작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네이버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일을 사랑하는 동료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 직원과 노동조합을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넥슨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지만, 선배들은 이전의 뜨거운 노동자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회사의 성공은 노동자의 땀으로 이룰 수 있지만, 회사의 건강함은 노동자의 목소리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긍지를 가지고 넥슨을 다닐 수 있도록, 노조도 언제까지나 넥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될 것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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