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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2 16:18 수정 : 2005.04.22 16:18

서울 당산동 임대아파트. 이주노 기자



무엇이 문제인가 3가지 쟁점 분석

정부가 임대주택 건설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2003년 말 현재 2.4%에 불과한 1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의 비율을 선진국 수준에 근접한 15%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야심찬 목표다. 이를 위해 2003년 7만호, 2004년 9만호의 국민임대주택을 계획대로 이미 공급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올해부터다. 당장 수도권의 부족한 택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활용한다는 구상이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연기금, 보험 등 민간자금의 활용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 목표마저 실종돼 버린 느낌이다. 서민주거 복지, 집값 안정, 건설경기 부양 등 3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정책 실효성만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참여정부 주택정책의 핵으로 떠오른 ‘임대주택 150만호 건설사업’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봤다.

많은 사람이 임대주택 문제를 헷갈려한다. 명칭부터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임대주택은 3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등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물론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부터 93년까지 지어졌다. 전용면적 7~13평으로 규모가 작고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만 입주할 수 있다. 영구임대주택은 현재 19만호 정도가 남아 있으며, 93년 이후에는 건설이 중단됐다.

국민임대주택은 전용면적 18평 이하로 영구임대주택보다는 큰 편이며, 98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2012년까지 100만호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국민임대주택이다. 하지만 현재 임대주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이다. 그 가운데서도 민간업체가 지은 5년 임대주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5년짜리’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임대아파트를 지어놓고 5년이 지나면, 일반분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민 동의를 얻으면 그 절반인 2년6개월만 지나도 분양 전환이 가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분양대금을 미리 전세보증금 형식으로 받아 사실상의 분양을 미리 해버리는 건설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무늬만 임대아파트’였던 셈이다.


문제는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을 때 공공택지를 낮은 가격에 분양받는 등 건설업체들이 갖가지 특혜를 받아왔다는 데 있다.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건설교통부는 결국 지난해 12월 ‘10년 임대’만 가능하도록 규정을 뜯어고쳤다.

이처럼 그동안 임대주택 건설은 사실상 민간 건설업체들이 주도해 왔다. 99년 기준으로 민간이 지은 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재고의 38.3%를 차지했다. 주택공사나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차지한 비율은 5.4%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1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 비율이 2.4%에 불과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의 ‘임대주택 150만호 건설사업’은 그동안 미미했던 공공부문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0만호 가운데 주택공사와 지자체가 100만호, 민간부문이 50만호를 각각 맡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의미 있는 정책 전환에도 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암초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쟁점1] 택지 확보가 가능한가

지난 4월13일, 의왕시 포일동. 곳곳에 국민임대주택단지 지정에 반대하는 섬뜩한 구호들이 걸려 있다. ‘의왕시를 빈민촌으로 만들려는 건설교통부는 각성하라’, ‘의왕발전 가로막는 임대주택건설 결사반대’. 20년 넘게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박영자(66)씨는 “그린벨트로 닭장 하나 마음대로 짓지 못해왔다”며 “그동안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하고 규제만 받아왔는데,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임대주택단지를 만들겠다니 어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그린벨트인 포일동 일대 16만4393평을 국민임대주택건설특별법에 따라 국민임대주택단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고 주민공람을 실시했다.

지난 2003년 말 제정된 국민임대주택건설특별법은 필요할 경우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단지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수도권 지역의 택지 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린벨트 해제는 환영하지만, 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들고일어섰다. 한 지역주민은 “여기서 차로 5분만 가면 판교”라며 “정부가 판교는 부촌, 의왕은 빈촌으로 만들려 한다”며 분개했다.

물론 임대주택에 대한 반감만이 전부는 아니다. 주민대책위원회 전영남 부위원장은 “임대단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가가 반영될 수 있도록 일단 그린벨트를 풀고 임대단지를 짓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지 않은 채 임대단지로 지정해 헐값에 수용하려 한다는 뜻이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임대주택단지로 지정된 성남 여수, 남양주 별내, 수원 호매실, 시흥 장현, 안산 상록, 부천 범박 등에서도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다.

▲ 의왕시 포일동 일대. 국민임대주택단지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주노 기자


그린벨트 해제 외에도 택지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가구 매입임대와 부도 임대아파트 매입이다. 다가구 매입임대는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이다. 지난해 10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강서구 화곡동 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심 밀집 지역의 다가구 주택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은 도시 외곽에 임대주택을 건설할 경우 저소득층은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점도 해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다가구 매입임대는 2002년부터 서울시에서 추진하다 지난해 포기했던 사업. 김철호 서울시 SH공사 임대팀장은 “다가구 주택은 평수가 작고 날림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 관리상 어려움이 많았다”며 “수급권자인 영세민들의 호응도 예상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다가구 매입임대를 처음 추진한 2002년은 부동산 투기로 전셋값까지 치솟던 시기. 애초에는 다가구 매입임대로 전셋값 폭등의 완충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시세에 비해 그리 저렴할 것이 없게 된 것. 주택공사는 정부 지원을 통해 임대료를 서울시의 경우보다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16만호가 부도상태에 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던 영세 건설업체들이 IMF 이후 줄줄이 쓰려지면서 생긴 후유증이다. 국민임대주택건설특별법은 이들 부도 민영 임대주택을 정부에서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방식으로 정부가 매입한 부도 임대주택은 단 한 채도 없다. 건설교통부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 김계범 사무관은 “올해는 우선 500가구 정도만 시범 사업을 실시한 후, 문제점을 검토해 확대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권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오랫동안 유지보수를 하지 않아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내심 매입보다는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분양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다가구 매입임대나 부도 임대아파트 매입이 택지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도 2008~2009년까지 이런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는 모두 2만호에 불과하다. 참여연대의 김남근 변호사는 “임대주택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땅이 부족한 데다, 2008년 정권이 바뀌고 나면 계속 추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장기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자원의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민간 공공임대주택 부문에 아직도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관련법 개정으로 임대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났지만, 예외조항이 있다. 현재 공공택지의 경우 전체의 40%를 임대주택용지로 조성해야 하고, 이 가운데 10%는 민간에게 할당된다. 문제는 민간 몫인 10%가 처음에는 10년 공공임대주택 용지로 분양이 되지만, 3개월간 분양이 안 될 경우 5년 공공임대주택용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게다가 6개월간 분양이 안 되면 일반 분양주택용지로 다시 전환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공공부문 택지의 비중을 더 높이는 등 한정된 땅을 장기 임대주택 건설에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쟁점2] 중형 임대아파트, 과연 필요한가

최근 서울시 SH공사에서 당산동에 짓고 있는 공공임대아파트는 25평형과 34평형 2가지다. 전용면적 18평 이하로 규정돼 있는 국민임대주택 평수를 초과한 것으로 중산층을 겨냥해 처음 선보인 것이다. 임대료 수준도 주변 시세와 큰 차이가 없다. 당산동 공공임대아파트는 월 임대료를 전액 임대보증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34평형의 경우 전세로 따져 1억4600만원이 된다. 주변 같은 평수 아파트의 전셋값은 1억5천~6천만원 수준이다. 김철호 SH공사 임대팀장은 “그동안 소형 위주로 짓다 보니 임대아파트는 열등재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굳어졌다”며 “앞으로 중형 임대아파트를 매년 10% 정도 짓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호철 재정경제부 정책조정총괄과장은 “소형인 국민임대주택은 영세민 주거 안정에 목적이 있다면, 중형 임대주택은 집값 안정이 주된 포인트”라고 말했다. 중형 임대아파트가 집값이 폭등할 경우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공공부문이 나서 중형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다. SH공사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서울시가 나서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중형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올라오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는 “임대주택 사업의 본래 목적은 집값이 너무 올라 자기 능력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SH공사가 나서 주거복지적 성격이 전혀 없는 중형 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하는지는 재검토해 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몰론 당산동 중형 임대아파트의 경우 국고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국민임대주택 기준인 전용면적 18평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사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택개념을 소유에서 활용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이라는 좁은 차원에서 벗어나 소득 수준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이 공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장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주택정책의 근본적인 쇄신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10~20년 후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로 인한 인구 정체와 성장 잠재력의 약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부양인구가 늘어나면 사회 전체적으로 사회복지비용과 조세 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가계 소비경제의 침체와 기업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 소장은 “장기 임대주택의 확대로 가계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 가계 소비가 원활하기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주택정책을 경제 성장 정책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쟁점3] 재무적 투자자 참여할까

정부의 ‘임대주택 150만호 건설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기금, 보험 등 재무적 투자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부 역시 연기금의 대표격인 국민연금이 움직여줘야 한다는 의중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다. 기금운영 측면에서는 수익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희석 국민연금기금 대체투자팀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기 임대주택 건설사업 참여를 검토해 봤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월 임대료를 시세보다 낮춰야 하는 데다, 임대료 인상 폭도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 의왕시 포일동 일대. 국민임대주택단지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주노 기자


가장 큰 변수는 택지를 얼마나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느냐다. 김 팀장은 “땅값이 싼 곳은 상대적으로 외진 지역으로 공실률이 올라가고, 좋은 지역은 공실률은 낮지만 땅값이 그만큼 비쌀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이 투자를 한다고 해도, 수익성이 나는 좋은 지역만을 골라 선별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연금 측의 계산으로는 판교 지역의 경우 연 5~6%대의 수익률이 나온다. 그러나 판교 같은 노린자위 지역에만 투자할 경우 정부가 이를 허용하겠느냐는 것이 문제다.

삼성생명은 정부정책을 위해 시장 자금을 끌어와 활용하겠다면 거기에 맞는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에 아무리 공감한다고 해도 둥근 사각형은 그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세제부분은 정부에서 세밀하게 검토해 보완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임대료 수준과 토지 공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삼성생명도 장기 임대주택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장기 임대사업은 20~30년간의 장기적인 연금형 현금 흐름이 중요한 생명보험사의 속성에 잘 맞는다”며 “지금 단계에서 적정 수익률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유동성 문제다. 국채의 경우 언제든 사고파는 것이 가능하지만, 임대주택 투자는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해 주려면 10년 임대 후 정부에서 이를 인수해 주는 등의 신용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3월 말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는 14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검토위원회의 논의 내용을 토대로 오는 6월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에서 단순한 의견 개진 이상의 새로운 단일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참석 위원들 간에 워낙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의 주택정책이 임대주택 활성화에 맞춰지면서 시민단체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참여연대와 도시연구소, 주거복지연대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발표에 맞춰 입장을 밝히기 위해 활발한 내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논의 결과를 토대로 올가을 정기국회에 임대주택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임대주택 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뒤늦게나마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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