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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4 19:10 수정 : 2005.01.04 19:10

① 성광과 분배의 ‘악순환’
② ‘제3계급’비정규직
③ 말라가는 성장 젖줄
④ 땅이 가난을 만든다
⑤ 좌담·한국경제의 제3의 길

‘집값’이란 표현은 사람들에게 종종 착각을 일으킨다.

집은 땅과 건물로 구성되는데, 건물은 사람이 사용하면서 점차 낡아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집값이 자꾸 오른다? 실은 집을 떠받치고 있는 땅값이 오르는 것이다. 건물이 낡아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 이상으로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집값’은 오른다. 재건축을 앞둔 도심의 낡은 아파트가 수억원을 호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물은 거의 가치가 없지만, 그 사이에 크게 오른 땅값이 재건축 덕분에 집값에 반영되는 것이다.



△ 집값의 실체는 땅이다. 우리나라 땅은 상위 5%의 사람들이 절반 가량을 갖고 있고, 땅값은 최근 4년 동안 연 평균 95조원씩 불어났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 이후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아파트 밀집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소유자 상위 5%가 전체의 44% 차지
10%만 올라도 앉은자리 105조 벌어
‘부익부 빈익빈’…분배왜곡 핵심노릇

땅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또 아무리 써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땅은 단지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부와 소득을 얻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땅이 부와 소득의 분배를 좌우하는 정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훨씬 심하다.

건설교통부의 공시지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초 우리나라의 땅값은 1829조원이다.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76%니까 실제 땅값은 2407조원 가량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는 2003년 국내총생산(GDP) 721조원의 3.3배에 이르는 것이다. 선진국의 땅값 총액이 대체로 국내총생산 규모와 엇비슷한 것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나라에 속한다. 이는 국토가 좁아 인구밀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땅이 많은 수익을 올려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나라의 땅값 변동을 살펴보면 ‘땅이 사람을 잡는다’는 표현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2000년 전국의 토지가격은 2027조원이었다. 2004년 초까지 4년 동안 땅값은 무려 380조원이나 늘어났다. 연평균 95조원씩 늘어난 것이다. 2000~2003년 사이 연간 국내총생산은 평균 651조원이었으니, 그 사이 땅을 가진 사람들은 해마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15%를 벌어들인 셈이다.

땅을 국민들이 골고루 소유하고 있다면 땅값이 얼마나 오르든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땅의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돼 있을 때, 땅값 상승은 심각한 분배의 왜곡을 부를 수밖에 없다.

1996년 나온 한 연구결과를 보면 93년 현재 우리나라의 땅은 상위 1%가 전체의 23.7%(가격기준)를 갖고 있고, 상위 5%가 전체의 44.2%를 갖고 있다. 상위 10%는 55.9%, 상위 20%까지 확대하면 이들이우리나라 땅의 69.7%를 소유하고 있다.

땅을 적게 가진 하위 40% 계층의 토지소유가액은 전체의 6.4%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구결과가 비교적 오래전 것이지만, 그 사이 이런 편중된 토지 소유구조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소유구조 아래서는, 땅값이 10%만 올라도 토지 소유 상위 5%의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105조9천억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총생산(721조3천억원·2003년)의 14.5%에 이르는 돈이다.

땅에 비하면 주택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주택 소유의 편중도 매우 심한 편이다. 지난 2003년 말 행정자치부가 2002년도 재산세 과세자료를 바탕으로 세대별 주택보유현황을 파악한 결과를 보면, 주택소유 총세대수는 832만 세대로 이중 2채 이상의 집을 가진 세대가 276만 세대에 이른다. 다주택 보유자들은 평균 2.95채를 갖고 있다. 서울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해서, 다주택 보유자 44만세대가 평균 3.24채를 소유하고 있다. 강남지역의 다주택 보유자들은 5만5000세대가 20만채를 갖고 있어 평균 3.67채를 소유하고 있다.

땅과 집의 소유 편중은 가격 상승과 함께 빈부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는 핵심 요인이다. 대규모 농지를 독점한 채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아먹고 살던 대지주는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땅의 절반을 소유한 채 가만히 앉아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리는 현대판 지주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땅값, 집값이 들썩거릴 때마다 한국은 이들 ‘지주의 나라’가 된다.


땅 형질변경 ‘뒷돈’에 국토 효율관리 ‘뒷전’

농민에게 땅은 하늘이지만, 부동산업자한테 땅은 돈이다. 돈 있는 곳인만큼 부패의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 공무원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부동산 관련 떡고물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부동산 관련 부패에서 먼저 꼽히는 것은 건축 인·허가 문제다. 지난해 12월 김용규 경기 광주시장도 아파트 건축 인·허가 일로 건축업자한테서 뒷돈을 받아 검찰에 구속됐다. 준공 현장조사도 문제인데, 기존에 공무원이 수행하던 것을 지난 2000년부터 시·군·구에서 선정한 ‘제3의 건축사’가 대행하도록 했으나 역시 부패의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건축사 선정권을 건축주 또는 이권단체인 지역건축사협회에 위임하는 등의 편법을 동원해 돈을 받고 부실 시공을 묵인하는 부조리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정성진)의 지난해 실태조사를 보면, 불법행위로 영업정지 1개월~2년의 처벌을 받은 건축사는 △2001년 873건 △2002년 913건 △2003년 769건 등으로 집계됐다.

불법적인 토지의 형질변경도 대도시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경기 남양주시, 하남시의 경우, 땅주인들이 농업용 시설을 창고나 공장으로 임대해 줘 100평당 연간 1800여만원의 부당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농업용 시설의 95% 정도가 이렇게 불법 용도변경된 것으로 부방위는 파악했다.

부방위 조사 결과, 지난 2000년부터 3년 동안 전국의 80개 시·군·구(대도시 접경지역)에서만 부당 인허가, 부당처리, 단속업무 소홀 등의 이유로 징계받은 공무원 수는 1961명에 이른다. 특히 형질변경과 관련해 공무원이 직접 가담한 경우도 같은 기간 경기도 4개시에서만 54명이 적발됐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126명, 6.4%만 징계를 받았을 뿐, 대부분(93.4%, 1835명)은 주의·훈계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부방위의 임윤주 제도1과장은 “불법 용도변경이 성행하면서 그린벨트를 야금야금 먹어들어가 결국 경기도 지역 난개발로 이어졌다”며 “땅을 둘러싼 부패를 막는 일은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부동산 보유세율
미국 10분의1 못미쳐
국민적 투기열 부채질

우리 부동산 보유세율 /미국 10분의1 못미쳐 /국민적 투기열 부채질

집값, 땅값이 크게 오를 때마다 역대 정부는 ‘투기꾼’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소수의 투기꾼이 끌어올린 부동산값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실제 부동산값의 지속적인 상승은 국민의 상당수가 ‘투자’ 대열에 가담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부동산이 별 세금부담 없이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준다는 게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든 것이다.

국내총생산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토지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비싼 것은 부동산 보유에 대한 세금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보유세율은 0.1%가량으로 미국(1.5%)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과세부담이 없는 만큼의 미래 기대수익이 현재가치로 할인돼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세는 부동산값 안정뿐 아니라, 소득의 재분배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연세대 경제연구소는 지난 2003년 12월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는 소득세와 1 대 1로 환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가격 급등기에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임시방편으로 투기심리를 위축시키는 데 그쳐왔다. 보유세는 오히려 줄어왔다. 보유세로 볼 수 있는 종합토지세, 재산세, 공동시설세, 도시계획세가 지방세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3년의 17.0%에서 2002년에는 12.7%로 낮아졌다. 반면, 등록세와 취득세 등 거래관련 세금이 지방세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4%나 되는 기형적인 조세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별취재팀- 정남구 김회승 안창현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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