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투기과열지구 자료 분석
9·13 대책 나오자 갭투자 급감
지난해 서울과 경기,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이뤄진 3억원 이상 주택 거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실제 입주 의사 없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끼고 거래한 ‘갭투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9·13 대책’을 내놓은 뒤 갭투자 비율은 고점에 비해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한겨레>가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투기과열지구 주택 매매 16만1835건 가운데 8만2170건(50.8%)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승계하고 실제 입주는 하지 않은 갭투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제 투기 목적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입주 의사 없이 보증금을 끼고 거래하는 주택 매매를 갭투자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 정부 당국이 갭투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자금조달계획서 분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갭투자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통계치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2017년 9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주택을 거래할 때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주택 매수자는 계획서에 실제 입주 여부를 밝히고, 현금·예금·대출 및 보증금 승계 등 주택 취득 자금의 상세 항목을 밝혀야 한다. 2017년 지정된 투기과열지구는 서울과 경기 과천시, 성남 분당구, 대구 수성구, 세종시 등이었다. 정부는 이어 2018년 8월 경기 하남시와 광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 대해서는 실제 입주 의사 없이 임대 보증금과의 차액만 지급한 주택 거래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자료를 지역별로 분석해 보면, 주택 매맷값이 비싼 서울과 성남시 분당구 등의 갭투자 추정 주택 매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3억원 이상 주택 거래 13만56건 가운데 7만17건(53.8%)이 보증금 승계를 통한 매입이었다. 분당구는 7506건 가운데 5021건이 보증금 승계 매매여서, 갭투자로 추정할 수 있는 주택 거래 비율(66.9%)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어 광명시가 1062건 가운데 410건(38.6%), 대구 수성구가 7688건 가운데 2667건(34.7%), 하남시가 2032건 가운데 633건(31.2%) 순이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갭투자 비율이 치솟았던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서울 시내에서 갭투자 추정 거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성동구(76.1%), 강남구(75.5%), 용산구(72.7%), 송파구(72.3%), 서초구(72.2%) 순이었다. 마포구도 66.7%로 70%대에 근접했다.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대표되는 과열지구들이다. 지난해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국토부가 지난 1월 책정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보면, 용산구 35.4%, 강남구 35.01%, 마포구 31.24%, 서초구 22.99%, 성동구 21.69% 순으로 많이 올랐다. 지난해 가격 상승을 주도한 구에 집값 상승을 기대한 거품 수요도 쏠린 셈이다.
갭투자 추정 주택 매매 비율은 지난해 가을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집값 상승을 기대한 추격 매수자들이 전세금을 지렛대로 한 갭투자에 뛰어들었을 것이란 추정이 확인된 셈이다. 해당 자료를 월별로 분석해 보면, 2017년 9월 전국 투기과열지구의 주택 거래 2462건 가운데 1217건이 보증금 승계 매매여서 갭투자 비율은 49.4% 수준이었다. 이 비율은 2017년 내내 30%대 후반~40%대 후반을 맴돌다, 2018년 1월 59.5%로 뛰어오른 뒤 2018년 9월(57.5%)까지 40%대 후반~50%대 후반 수준을 유지했다. 이 추세는 ‘9·13 대책’ 뒤 반전했다. 지난해 10월 갭투자 추정 주택 매매는 전체 8682건 가운데 3794건(43.7%)으로 떨어졌다. 이어 지난해 11월 38.6%, 12월 39.4%를 기록했다. 고점 대비 20%포인트 가까이 비율이 떨어진 것이다. 대출 규제를 중심으로 다주택자의 주택 거래를 막은 대책이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집값 상승의 기대감이 떨어진 가운데 강력한 대출 규제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갭투자 비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물론 보증금 승계 매매를 모두 갭투자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역전세난’ 등 주택시장 교란의 원인이 된 갭투자의 현황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통계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팀 부장은 “전월세에 머물다 전세를 끼고 주택 구입으로 갈아타는 등 실수요자의 움직임이 투기 목적과 혼재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다소 과장된 숫자일 순 있다”면서도 “같은 투기과열지구 안에서도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서울, 분당 등 지역의 갭투자 비율이 높다는 점이 확인되는 등 시장 상황을 최초로 파악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호영 의원은 “‘빚내서 집 사라’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갭투자가 부동산 재테크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는 사실이 통계치를 통해 증명된 것으로 본다”며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전세 보증금을 끌어들인 것인 만큼 집주인 본인들이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안 의원은 “갭투자의 리스크가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정확한 모니터링과 함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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