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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5 15:13 수정 : 2019.06.25 22:22

E. 진 캐럴. 뉴욕/AP 연합뉴스

‘엘르’ 칼럼니스트 “23~24년 전 성폭행 당할 뻔”
트럼프, 20여건 논란 시달렸지만 가장 심각한 수준
트럼프 “그 사람 전혀 몰라”→“내 타입 아니다”

정치권·언론 의외로 조용…“트럼프 추문 피로증”
‘뉴욕 타임스’ 편집인 “더 크게 썼어야” 반성도

E. 진 캐럴. 뉴욕/AP 연합뉴스
갖은 성폭력과 성추문 의혹을 겪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성폭행 시도라는 심각한 논란을 만났다. 20건이 넘는 그의 성적 비위 논란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웬일인지 정치권과 언론은 과거보다 조용해, 일각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 논란은 패션지 <엘르> 칼럼니스트 E. 진 캐럴(75)이 자신이 쓴 책의 발간을 앞두고 21일치 <뉴욕 매거진>에 트럼프 대통령한테 성폭행당할 뻔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캐럴은 1995년 말 또는 1996년 초께 뉴욕의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에서 마주친 트럼프 대통령이 드레싱룸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란제리를 입어봐달라고 한 뒤 드레싱룸에 따라들어와 자신을 벽으로 세게 밀친 뒤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캐럴은 트럼프 대통령이 옷을 강제로 벗기고 성기를 밀어넣었다며, 강하게 저항해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당시 친구 2명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으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일 내놓은 해명은 캐럴의 주장은 거짓이고,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987년 트럼프 대통령과 캐럴이 파티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 타입이 아니다”라는 말로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캐럴의 말은 완벽한 거짓말이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했다. 또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다 기억할 수는 없잖냐, 캐럴의 책 판매를 위한 상술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 제기된 성폭력 의혹에 대해서도 “그 사람 페이스북에 들어가봐라. 난 그런 사람 안 고른다”는 모욕적 표현을 쓴 바 있다.

캐럴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뉴욕 매거진.> “이게 23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드레싱룸에서 나를 공격했을 때 입은 옷”이라고 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21명의 여성과 관련된 성폭력이나 혼외 성관계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캐럴의 폭로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이라면 중범죄에 해당하는 성폭행 또는 성폭행 미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은 의외로 조용하다. 최근 내년 대선을 위한 출정식을 연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재가 될 법한데도 그렇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심각한 주장”이라고 언급했고, 다른 민주당 주자들도 비슷한 투의 발언에 그쳤다. 언론들 중에는 <시엔엔>(CNN)이 캐럴의 인터뷰를 방영하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일부 미국 언론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고 보는지 몇 가지 분석을 내놨다. <타임>은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민주당 쪽이 조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단 민주당은 대선 주자가 25명이 난립한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게 우선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기대치가 워낙 낮은 상황에서 이를 쟁점화해봤자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여러 성폭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인물이다. 2017년 <폴리티코>가 의뢰한 조사에서, 유권자들의 50%는 이런 성폭력 주장을 믿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표를 준 이들의 39%도 그렇다고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칼럼도 이와 비슷한 분석을 내놓으면서, ‘그래봤자 바뀌는 것 없다’는 식의 피로증도 한 이유로 보인다고 했다. 한 여자 교수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한테 대학생 때 성폭행당할 뻔했다고 의회 인준 청문회에까지 나와 증언했지만 피해 주장을 하는 쪽만 위협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언론은 이 사건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면서도, 대통령의 중대한 성범죄 의혹에 대해 지루해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캐럴의 폭로 초기에 이 사건을 800단어짜리 짧은 기사로 다룬 <뉴욕 타임스>에서도 반성이 나왔다. 이 신문의 딘 바케이 편집인은 24일, 자신의 매체가 이 사건을 일요일치까지도 지면으로 다루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신중한 것이었다”며 유감을 밝혔다. 그는 캐럴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정황이 확보되지 않았고, 자사가 독자적으로 발굴하고 취재한 내용이 아닌 점 등이 소극적 보도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신문은 캐럴이 사건 직후 트럼프 대통령한테 당한 일을 털어놨다는 두 여성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게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바케이 편집인은 저명 인사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폭로한 내용은 더 크게 다뤘어야 했다며, 앞으로는 적극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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