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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17 21:37 수정 : 2016.01.17 22:06

대만 정권교체

차이잉원은 누구

“참신함과 깨끗함,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다.”

차이잉원(60) 대만 총통 당선자와 과거 행정원에서 함께 일했던 한 지인은 그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대만 첫 여성 총통에 당선된 차이잉원의 정당정치 경력은 12년에 불과하다. 대만국립정치대 법대 교수로 리덩후이 전 총통의 법률 고문을 지내기도 한 그는 2000년 중국 관계를 다루는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48살이던 2004년 민진당에 입당했고 2006년 행정원 부원장을 거쳐 2008년엔 민진당 출신 천수이볜 총통의 부패 혐의로 위기에 몰린 당의 주석이 됐다.

기업인 가문…할머니는 소수민족
2004년 민진당 입당, 4년뒤 당 주석
이후 9차례 선거서 7승 ‘선거의 여왕’

동성결혼 찬성·원전 반대

당 주석 취임 이후 치러진 9번의 여러 선거에서 7번이나 승리를 거뒀다.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선거에선 거듭 고배를 마셨다. 2010년엔 신베이 시장 선거에서 주리룬 후보에게 5%포인트 차이로 패했고, 2년 뒤 총통 선거에선 대학 선배로 친한 사이인 마잉주 현 총통에게 6%포인트 차이로 지기도 했다.

차이 당선자는 국민당의 중국 접근 노선과는 거리를 두지만, 천수이볜 전 총통과 같은 강경한 대만 독립 노선을 취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는 천 정권 시절인 2001년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재직하며 중국과의 ‘소3통’(수송, 교역, 우편 왕래)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2010년에 “중화민국(대만)은 일종의 망명정부”라고 말해 논란이 인 적이 있으며, 2008년 11월 중국의 대만 창구 기관인 해협양안관계협회 천윈린 회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대만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 그는 ‘양안 정책 현상유지’를 표방했다. 차이 당선자에 대한 책을 쓴 장징원은 <비비시>(BBC)에 “그는 진한 녹색(민진당 강경파)이 아니다. 대만 독립을 입에 올린 적도 없다”고 말했다.

차이 당선자는 이번 총통 선거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결단력을 존경한다고 말한 뒤 ‘대만의 메르켈’이라고도 불린다.

영국 <비비시> 방송은 차이 당선자가 아시아 여타 여성 정치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유력한 가문 출신이 아니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전했다.

차이 당선자는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차이제성은 자동차 정비업과 부동산, 건설, 호텔업을 두루 한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모친은 네번째 부인이었다. 차이 후보의 할머니는 대만의 산악지역에 살아온 원주민 파이완족이고, 부친 쪽 조상은 청나라 시절 중국 푸젠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해온 하카(客家) 출신이다. 차이 당선자는 1940년대 후반 국공내전 뒤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인사들의 출신과 자신의 출신을 대비하며 “하카의 딸이 총통이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차이 당선자는 미혼이며 고양이를 기른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성적 소수자 축제 때 페이스북에 “사랑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반대 의지가 분명하다. 민진당은 결성 때부터 원전 반대를 표명했다. 그는 첫번째 총통 선거에 나섰던 2012년에 2025년까지 대만의 탈원전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는 넉달여 뒤인 5월20일 취임한다.

타이베이/성연철 특파원, 조기원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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