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4 15:07
수정 : 2017.08.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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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이드파크에 있는 쿡 선장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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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이드파크에 138년 전 설치
“1770년 영토 발견” 문구 논란 핵심
원주민 쪽 “그전엔 사람 안 살았나”
“백인 지상주의의 상징… 철거 마땅”
“탈레반적 사고”·“역사 지우기”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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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하이드파크에 있는 쿡 선장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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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대적 철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연합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논란이 태평양을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로 번졌다. 대상은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을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다.
24일 오스트레일리아 언론들 보도를 보면, 시드니 의회는 하이드파크에 있는 쿡 선장 동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검토에 착수했다. 동상은 1879년 이곳에 설치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난동을 계기로 ‘이것도 있소’라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에이비시>(ABC)방송의 원주민 문제 담당 에디터 스탠 그랜트다. 그는 18일 쿡 선장의 동상에 대해 “허구”와 “유해한 신화”의 상징이라며 철거 필요성을 제기했다.
쿡 선장의 동상은 기마상인 리 장군 동상처럼 군사적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대신 한손에 망원경을 든 개척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논란의 핵심은 기단에 써있는 “이 영토를 1770년에 발견했다”는 대목이다. 영국 요크셔 출신인 쿡 선장은 해군에 입대해 남태평양 일대에서 섬과 대륙을 잇따라 ‘발견’한 인물이다. 177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탐험한 뒤 이를 영국 영토로 선언했다. 탐험 활동을 이어가다 1779년 하와이 원주민한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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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선장 동상 기단의 문구. “1770년에 이 영토를 발견했다”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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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 입장에서는 쿡 선장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수만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애버리진)한테는 맞지 않는 얘기일 뿐 아니라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1770년 전에는 이 땅에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았다는 투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원주민들을 멸종 직전으로 몰고간 상황까지 고려하면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논란은 아메리카대륙 ‘발견자’ 콜럼버스를 둘러싸고도 진작 제기돼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도시 시드니는 영국인들이 최초로 식민지로 삼은 곳이라 동상의 상징성은 더욱 크다.
그랜트는 “동상의 명문은 곳곳에서 원주민 사회를 황폐화시킨 백인 기독교인들의 우월함에 대한 확신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177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단 말이냐”라고 했다.
원주민 사회 지도자들과 일부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이런 의견에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이런 움직임은 “탈레반 같은 짓”이라며 현상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 상징물은 다 치우란 말이냐”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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