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8 19:37
수정 : 2017.11.2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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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이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 수도 네피도에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을 만나 함께 걷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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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민족 정체성 존중해야” 우회 권고
미얀마 내 가톨릭 신자 우려 반영한듯
수치 “라카인주 문제, 세계가 관심…
다양성 가져오는 것이 정부의 목표”
옥스퍼드시 의회, 수치 ‘명예시민’ 자격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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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이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8일 수도 네피도에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을 만나 함께 걷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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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군부 지도부와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을 모두 면담한 뒤 내 놓은 연설에서 로힝야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시엔엔>(CNN) 방송은 교황이 수도 네피도에서 28일 수치를 만난 뒤 “각 민족 집단과 정체성 존중”을 촉구하는 공개 연설을 했지만 ‘로힝야’라는 용어와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다만 교황은 “미얀마의 가장 위대한 보물인 사람들이 민족 분규와 적대 행위로 크게 고통받고 있다”며 “미얀마의 미래는 평화로워야 하며, 평화는 각 민족 집단과 그들의 정체성, 사회의 개별 구성원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교황과 나란히 연설한 수치도 로힝야 탄압이 일어난 “라카인주 상황”을 언급했지만 로힝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수치는 “라카인주에서 서로 다른 공동체 사이에 신뢰와 이해가 사라졌다”며 “정부가 직면한 많은 도전 과제 중 라카인주 상황이 전세계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을 보호하고 포용력을 강화하며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다양성을 가져오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사는 무슬림들인 로힝야족은 군부가 로힝야족 일부의 경찰서 습격을 이유로 8월부터 탄압을 본격화하면서 60만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교황이 올해 초 로힝야족을 “형제자매”라 칭하며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음에도 이번 방문에서 직접 언급을 피한 것은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1%를 겨우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얀마 내 가톨릭 신자들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내부에서는 교황이 종교적·민족적 소수자인 로힝야 탄압을 강하게 규탄할 경우, 역시 종교적 소수자인 가톨릭 신자들에게 화살이 돌아갈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만 유엔과 미국이 로힝야 탄압을 ‘인종 청소’라고 규정한 상황에서 교황이 이번 방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적극 발언할 것이라는 시민단체 등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로힝야 문제를 연구하는 페니 그린 퀸메리대 교수는 <시엔엔>에 “교황이 가장 고통받는 이들의 이름을 언급조차 못한다면, 수치와 군부에게 어떤 도덕적 압력도 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미얀마에 도착한 첫날인 27일에는 로힝야 탄압에 책임이 있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최고사령관을 만났다. 교황청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미얀마 군 지휘부가 이 변화의 시기에 (미얀마) 당국의 중대한 책임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교황이 군부와의 면담에서 로힝야 탄압을 직접 언급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데페아>(dpa) 통신은 흘라잉 사령관이 교황에게 “미얀마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28일 미얀마의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곤에서 만나 “다양성”을 강조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난민의 미얀마 송환 협정이 지난 23일 발표된 가운데 <시엔엔>(CNN) 방송은 방글라데시 외무부가 “미얀마로 돌아가는 난민의 수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27일 보도했다. 외무부는 또 “모든 난민은 그들이 원할 경우에만 송환된다. 테러리스트와 연관되지 않은 한 미얀마로 돌아간 뒤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시엔엔>은 그러나 “유엔과 미국이 ‘인종 청소’라고 표현한 상황에서 도피한 난민 중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한편 수치가 로힝야 문제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있다. <가디언>은 옥스퍼드시 의회가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에게 1997년 부여했던 옥스퍼드시 명예시민 자격을 영원히 박탈하기로 결정했다고 27일 보도했다. 시의회는 수치에게 로힝야 탄압의 책임을 물어 “폭력에 눈감은 사람을” 기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만장일치로 박탈을 의결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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