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국의 급속한 시장경제 성장과 함께 빈부·도농·지역간 격차로 인한 사회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노동자·농민 등 이른바 ‘주변계층’이 사회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16일 춘절(설)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시성 시안 철도역 모습. 시안/로이터 연합 [10기 3차 전인대이후 중국] <하> 사회분야 지난 5~14일 열흘간 열린 전인대 10기 3차회의 개막을 앞두고 <경제> <반월간> <참고소식> 등 중국 국무원 산하의 각종 관영 매체에서 중국사회의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지도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5일 전인대 개막일에 발표한 <정부사업보고>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현재 도농격차, 지역격차, 빈부격차가 현저하고 일부 극빈계층이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어 사회안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힌 뒤 “인민대중의 실제 이익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를 힘써 해결하고 도시와 농촌 빈곤대중의 기본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부가 사회불안의 해소를 주요 정부사업 항목의 하나로 꼽은 건 지난 20여년간 중국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안으로 곪아온 모순과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시위 7년새 3배 늘어… 조직적 형태로 발전 ◇ 항쟁의 주체로 등장한 노동자·농민 = 중국 당국이 철저한 보도통제 정책을 쓰고 있어 중국 언론매체에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 10여년간 중국사회에서 노동자, 농민의 집단행동은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위젠룽(43) 중국사회과학원 농촌발전연구소 연구원 겸 교수에 따르면 전국에서 벌어진 노동자·농민·지역주민 등의 시위·항의 등 집단행동은 1993년 8709건에서 1999년 3만2000건 이상으로 증가해 7년간 3배가 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2004년 3년 동안 집단행동은 연평균 4만회 이상이었다고 위 교수는 밝혔다. 이런 집단행동의 주체는 대부분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들이 중국에서 사회항쟁의 주체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 노·농 조직의 활성화=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은 투쟁 대상, 방식, 조직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농민항쟁은 개발과정에서 박탈당한 토지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투쟁 대상은 주로 향촌 인민정부의 간부이며 조직 또한 느슨해 퇴직한 지방관리, 퇴직 군인 등이 조직자로 등장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주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밀린 임금 지급 등의 요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투쟁 대상은 자본가와 경영자이며 투쟁 조직은 ‘학습조’ ‘마오쩌둥사상학습모임’ 등 느슨한 소모임에서부터 ‘시위 지도소조’ ‘파업위원회’ 등의 조직적 형태를 갖추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중항쟁에서 적지않은 퇴직군인들이 지도부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조직 체험을 통한 동원능력을 갖추고 있어 민중항쟁에서 자주 지도부 구실을 맡았으며, 후난성에서는 퇴직군인 10만여명이 ‘반부패 부대’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사회정의 확립없인 … 갈등구도 심화될듯 ◇ 엘리트 연합과 노·농 연합 = 위 교수는 “1989년 6·4 천안문사태를 기점으로 중국사회의 항쟁이 지식 엘리트가 주도하는 진보적 정치투쟁에서 노동자·농민이 주체로 나선 권익투쟁으로 전환했다”고 지적한다. 전자가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치 아래 사회·정치체제의 개혁을 추구”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법질서의 틀 안에서 노동자·농민의 권익을 지키려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교수는 항쟁 주체의 변화가 1992년 덩샤오핑의 이른바 ‘남순강화’ 이후 경제적 개혁개방이 재추진되면서 “국가권력이 지식 엘리트의 정치적 열정을 흡수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권력을 대변하는 정치 엘리트, 자본을 대변하는 경제 엘리트, 문화 주체를 대변하는 지식 엘리트가 연합해 사회의 주요한 경제적 성과를 누림과 동시에 이들 상호간의 ‘신분 이전’ 통로가 확보”됐다. 예컨대 정치 엘리트인 당정간부는 경제 엘리트와 교류통로가 있기 때문에 쉽게 경영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형성한 ‘엘리트 연맹’은 주변계층을 소외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공고한 지배집단을 형성했다. 진보적 정치투쟁 이끌던…지식엘리트는 권력편입 반면에 광범한 노동자 농민계층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저임금·빈농 계층으로 남아 주변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은 사회의 핵심집단에 진입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지식 엘리트가 지배집단과 손을 잡아, 이들은 의식과 조직이 모두 미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경제적 좌절을 통해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 최근의 한 농민 집단시위에서는 “현대의 농노에서 해방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위 교수는 중국 사회에서 “이미 노동자·농민 항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사회운동이 터져나올 수 있는 조건이 배양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반부패” 구호가 두 집단을 연결하는 고리 구실을 할 수 있다며 “현 지도부가 엘리트 연맹-노동자 농민 연맹의 구도를 깰 수 있는 사회정의 체계를 확립하지 못할 경우 이 대립구도는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 “집단행동 · 단체교섭권 보장” 주장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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