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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5 08:43 수정 : 2005.05.25 08:43

우이 부총리 <한겨레신문>

"역시 철낭자답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불과 몇시간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우이 부총리의 행보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은 `여걸답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제예의상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일본측 비난과는 기본적으로 맥을 달리한다.

오히려 `잘못된 역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정서가 중국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 부총리가 중국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 취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녀의 근성과 배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일본에 도착한 우 부총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바로 전날 국회에서 "전몰자 추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는 다른 나라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알고 자신과의 회담에서 "같은 말을 듣는 건 견딜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우 부총리는 이에 따라 본국 지도부에 회담 거부를 요청했고 22일 밤 지도부로부터 제의에 동의한다는 회신이 왔다는 것. 그녀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당황한 일본측이 충분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국내의 급한 일'만을 언급한 뒤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한번 한다면 하는 우 부총리의 배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찍이 그녀는 `중국의 대처'나 `철낭자'로 불리었다. 1938년 후베이성우한에서 태어난 우 부총리는 1962년 베이징 석유학원을 졸업했다. 그 뒤 26년간 석유화학회사에서 근무하다 베이징 부시장이 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중국 정계에서 여걸로 통한다. 1990년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칼라 힐스 대표와의 담판에서 `미국의 여걸'이었던 힐스가 중국내 불법복제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좀도둑'이라는 표현을 하자 그녀는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유물을 강탈해간 `날강도' 아니냐"고 맞대응해버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장쩌민이나 주룽지 등 당시 중국 최고수뇌부의 애정어린 지원을 이끌어낸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주룽지마저 그녀에게는 질책을 한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결국 우이는 1998년 전인대에서 주룽지 전 총리의 천거로 대외경제무역합작부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나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유치 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녀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파문이 일던 때다. `사스와의 전쟁'을 이끌 야전 사령관으로 화려하게 나타난 그녀는 중국인들에게 여걸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2003년 11월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올랐고, 2004년에는 중국 여성최초로 부총리 반열에 등극했다. 독신인 우 부총리는 과거 쑨원의 부인 쑹칭링, 마오쩌둥 부인 장칭, 저우언라이 부인 덩잉차오 등 중국의 여걸들과 달리 실력자 남편의 후광없이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의 오늘은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베이징 부시장 시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1년 이상 집에 들어가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친화력을 자랑하고, 다재다능한 면모도 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내 삶에 끼어들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라고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하고, 노래와 낚시, 골프,볼링, 테니스 등 스포츠는 물론 굴착기 운전경력이 있을 정도다. 2002년 중국 전국부녀연합회가 뽑은 `중국의 10대 여성'에 탁구 세계챔피언 덩야핑을 제치고 1위에 뽑힐 만큼 대중적 인기도 진작부터 상당했다.

(상하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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