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 부총리 <한겨레신문>
|
그녀는 중국 정계에서 여걸로 통한다. 1990년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칼라 힐스 대표와의 담판에서 `미국의 여걸'이었던 힐스가 중국내 불법복제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좀도둑'이라는 표현을 하자 그녀는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유물을 강탈해간 `날강도' 아니냐"고 맞대응해버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장쩌민이나 주룽지 등 당시 중국 최고수뇌부의 애정어린 지원을 이끌어낸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주룽지마저 그녀에게는 질책을 한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결국 우이는 1998년 전인대에서 주룽지 전 총리의 천거로 대외경제무역합작부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나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유치 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녀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파문이 일던 때다. `사스와의 전쟁'을 이끌 야전 사령관으로 화려하게 나타난 그녀는 중국인들에게 여걸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2003년 11월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올랐고, 2004년에는 중국 여성최초로 부총리 반열에 등극했다. 독신인 우 부총리는 과거 쑨원의 부인 쑹칭링, 마오쩌둥 부인 장칭, 저우언라이 부인 덩잉차오 등 중국의 여걸들과 달리 실력자 남편의 후광없이 당당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의 오늘은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베이징 부시장 시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1년 이상 집에 들어가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친화력을 자랑하고, 다재다능한 면모도 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내 삶에 끼어들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라고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하고, 노래와 낚시, 골프,볼링, 테니스 등 스포츠는 물론 굴착기 운전경력이 있을 정도다. 2002년 중국 전국부녀연합회가 뽑은 `중국의 10대 여성'에 탁구 세계챔피언 덩야핑을 제치고 1위에 뽑힐 만큼 대중적 인기도 진작부터 상당했다. (상하이/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