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17 15:12 수정 : 2005.01.17 15:12

`정부 전복을 기도한 부르주아들의 난동'인가 아니면 `중국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사건'인가. 1989년 톈안먼 사태의 주역인 자오쯔양(趙紫陽.86) 전 중국 당총서기가17일 숨을 거두면서 다시한번 톈안먼 사태의 역사적 평가가 화두로 대두하고 있다.

중국 당국의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톈안먼 사태와 관련, "정부전복을 기도한 부르주아식 자유주의의 확산을 차단하지 못한 당시 지도층의 실패"로 규정하며 "당의 무력진압은 적절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당시의 혼란상을 방치했다면 중국의 오늘날 발전은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톈안먼 사태 15주년을 즈음해 내외에서 역사적 재평가 문제가 제기되자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당시 중국 정부는 결단을내려 안정을 회복했다"며 "이 덕분에 중국은 경제건설, 인민생활, 법치사회 건설,인권, 외교 등 다방면에서 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는 지금도 민간인 3천여명이 부상하고 200여명이 사망한 희생을 치른 톈안먼 사태에 대한 기존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또 매년 찾아오는 톈안먼사태 기념행사를 막기 위한 조치도 경제성장과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위상 강화를 위해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톈안먼 사태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제3세대 지도부가 퇴진한 지금,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장쩌민과 리펑으로 대변되는 강경파들이 걸어놓은 빗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물론 톈안먼 시위 당시 자오쯔양 총서기를 수행했던비서였던 원자바오총리 등 제4세대 지도부는 과거와 맥락을 달리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있다.

실제로 류젠차오 대변인은 브리핑 도중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되던 톈안먼 사태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발생한 정치 풍파(春夏之交的一場政治風波)'라고 불러 톈안먼 사태를 보는 중국 정부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는게 아니냐는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중국 정부내 동향과 상관없이 전문가들의 평가는 일관되다.

다시말해 이 사건은우발적으로 일어난 듯 보이지만 중국 체제가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점이 근본원인이었다는 것. 가장 큰 원인으로는 역시 경제정책과 정치구조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1978년 개혁ㆍ개방 추진이후 시장경제 원리의 도입이나 서방과의 교류 확대 등으로 경제의 자유화는 큰폭의 진전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식 통제가 만연하는 모순이 있었다.

지식인과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철저하게 억압됐다.

중국 지도부로서는 정치자유화로 인해 붕괴된 구 소련의 전철이 두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 지도부도 놀란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중앙과 지방간 대립, 빈부의격차,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른바 계층ㆍ지역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다.

여기에 치안의 악화와 정부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민중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었다.

실업자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이 때 부정부패라는 불씨가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말해 사회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결합돼 톈안먼 시위로 표출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재미있는 것은 톈안먼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제들이 오늘날 중국이안고 있는 현안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톈안먼 사태는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평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톈안먼 사태로 만만치않은 대가를 치러야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대외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톈안먼 사태의 여진이 채 가시기 전인 1993년단 두표 차이로 호주에 올림픽 개최지를 내줘야했던 것은 중국으로선 아픈 대목이다.

또 지난 2000년 미국의 포린 어페어즈가 공개한 이른바 `톈안먼 페이퍼' 등에서톈안먼 시위 진압이 당시 강경파들의 주도로 이뤄졌음이 드러나면서 텐안먼 사태는이후 중국지도부에게 인권문제와 함께 아킬레스 건처럼 여겨졌다.

아직도 매년 6월4일이 되면 베이징 톈안먼 광정은 살벌한 분위기가 감돈다.

톈안먼 사태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막으려는 공안당국의 서슬퍼런 경계가 매년 재현된다.

이런 긴장상태는 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내려지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홍콩언론의 보도대로 자오쯔양이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는한 톈안먼 사태는 아직 끝나지않은 모양이다.

(상하이/연합뉴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