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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5:14 수정 : 2005.01.17 15:14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총서기가 사망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가 실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톈안먼 사태가 새삼 관심을 끈다.

당시 유혈 진압에 나섰던 지도부내 강경파들과 이들에 맞서 시위대를 이끈 반체제 인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강경파 지도부로는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과 진압을 진두 지휘했던 양상쿤-양바이빙 형제, 리펑 총리 등이 손꼽힌다.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태 이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내놓은 뒤 평당원 신분임에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추앙받으며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1997년 2월 사망했다.

보수파의 대표 주자로 강경 진압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리펑 총리는 이후에도비교적 탄탄한 지위를 누려왔으나 지난 98년 주룽지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물러나는 등 권력 핵심에서 떠났다.

리펑은 최근 한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톈안먼 사태 무력 진압은 덩샤오핑의확고한 지원 아래 이뤄졌다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군부를 움직여 톈안먼 사태를 무력 진압하는 수훈을 세운 양상쿤은 93년 3월 제8기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에서 물러난 뒤 98년 92세로 사망했다.

동생 양바이빙은 톈안먼 사태 이후 승승장구해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 당중앙군사위 위원 등 군부 최대의 실력자로 부상했으나 93년 이후 당 중앙정치국원자리만 유지한 채 한직으로 밀려났다.

천윈, 왕전, 리셴녠 등 당시 국가지도부를 형성했던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뜨고 없다.

자오쯔양과 더불어 무력 진압에 반대했던 후치리는 자오와 함께 실각한뒤 91년 6월 기계전자공업부 부부장으로 복권, 8기 전인대에서 전자공업부장으로 승진했다가 97년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톈안먼 광장에서 베이징의 봄을 구가했던 반체제 주역들의 현주소는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중국 당국이 사태 진압 직후 수배령을 내렸던 21명의 학생 지도자 중 서방에 망명한 인사는 96년 5월 미국으로 탈출한 류강을 비롯한 11명이며, 중국에 남아 있는 10명 가운데 3명은 행방이 불확실하다.

톈안먼 시위를 주도한 막후 실력자로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됐던 왕단은 10년간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 98년 미국으로 망명, 현재 하버드대학에서 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98년 4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6월이면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여왔으며 96,97년 연속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다.

베이징지역 대학생연합회장으로 왕단과 함께 톈안먼 시위를 이끈 신장 위구르 출신인 우얼카이시(吾爾開希)는 프랑스로 망명한 뒤 반체제 조직인 '해외중국민주전선'을 결성, 미국과 일본에 지부를 설치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얼카이시의 뒤를 이어 시위대 대표를 맡았던 여학생 지도자 차이링은홍콩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시위 주도 혐의로 6년간 수감생활을 한 뒤 95년 6월 석방된 류강은 이듬해 5월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서방 망명을 주선해주는 홍콩의 비밀 지하조직 방울새[黃雀]등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중앙민족학원 출신으로 중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정윈과 왕즈신, 장즈칭 등 3명은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sdcho@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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