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중국외교 - (하) 에너지 외교
에너지수요 급증…세계2위 수입국
수입원 다원화 위해 지구촌 누비며
실용외교 기조 상당기간 유지할 듯 “에너지 문제는 중국 발전과 관련된 중대한 전략적 문제다. 샤오캉(의식주가 해결된 고루 잘 사는 사회) 건설 목표 실현을 위한 확실한 에너지자원 보장책을 내놓으라.” 지난달 27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당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한 발언의 요지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가 에너지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제4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직후, 극동 송유관 확보를 위한 원자바오 총리의 러시아 방문을 시작으로, 후 주석과 원 총리는 ‘자원’을 찾아 지구촌을 곳곳을 누비고 있다. 특히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의 2차례에 걸친 러시아 방문외교 공세를 통해 이달 초 결국 러시아로부터 송유관 건설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요한 국가전략 분야에 대해 ‘영도소조’라는 이름의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를 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운용해온 것은 대만문제, 농촌문제, 금융문제 등 8개였다. 여기에 올들어 9번째로 ‘에너지영도소조’가 추가됐다. 그만큼 에너지가 긴박한 국가적 현안이 됐다는 얘기다.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1993년부터 에너지 수입국으로 돌아선 중국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수입국이다. 지난해 세계 원유 수요 증가분의 35%는 중국 몫이었다. 지난해 중국은 1억7000만t의 원유를 자체 생산하고 1억2000만t의 원유·석유를 수입했다. 따라서 원유·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확보’는 중국 외교전략의 새로운 키워드 노릇을 하고 있다. 그 핵심은 수입원 다원화다. 양위펑 국가발전개혁위 연구원은 “한 나라에 견제당하지 않도록 에너지 외교를 다원화해야 하며, 동시에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에너지와 관련해서라면 어떤 지역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해 3월 경제신문 〈21세기경제보도〉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국제 협력 공작은 외교공작 가운데 매우 큰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장캉 중국석유화학탐측개발연구원 자문위원회 부주임은 지난해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에너지전략 지역을 중동, 러시아, 동남아·대양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중남미 등 다섯 곳으로 나눴다. 이른바 ‘5극 외교’이다. 중동 지역은 최대 원유 공급처이다. 중동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49%로 70~80%에 이르는 한국·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2020년까지는 높은 의존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미국의 사활적 이해 지역이므로 중국으로선 다른 대체지역을 확보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러시아는 에너지 확보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봉쇄망을 뚫기 위해서도 중요한 거점이다. 지난해 러시아와 인도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올해 초 미·일과 인도의 군사·경제협력 강화 추진 등은 중국에겐 불안 요소이다. 이에 맞서 러시아의 시베리아 송유관을 카자흐스탄~중국 신장·티베트를 거쳐 인도와 연결하는 중국의 대형 프로젝트는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중국 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이는 파키스탄에 가로막혀 중동과 송유관을 직접 연결할 수 없는 인도로서도 매력적인 방안이다. 러시아·인도·중국 세 나라가 최근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속사정들이 깔려 있다. 세계에서 중국과 더불어 석유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대양주 지역은 남중국해 등 분쟁 요소를 갖추고 있어 공동개발 등 협력이 절실한 지역이다. 중앙아시아는 석유 매장량도 매장이지만, 지정학적 가치에서 볼 때 중국이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은 석유 자원을 확보하더라도 운송비가 비싸 다른 지역에 비해 당장은 그리 경제적이지 않다. 중국이 이들 나라에 접근하는 방식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후 주석의 아프리카 순방과 쩡칭훙 부주석의 중남미 순방에는 중국석유 등 에너지 분야 고위관리들이 대거 수행함으로써 이들 지역까지 빈틈없이 ‘외교공작’을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 에너지외교의 실체는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한 실리, 즉 실용주의이다. 이에 따라 과거 ‘제3세계 비동맹 외교’의 중심축이었던 중국이 이제는 다른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며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 외교가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샤오캉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2020년까지는 적어도 이런 실용주의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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