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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9:50 수정 : 2005.01.21 19:50

지도부 참석범위·유골처리 고민

중국 당국은 지난 17일 숨진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장례식을 베이징 서쪽 교외 바바오산 혁명공묘(공원묘원)에서 비공개로 치르기로 20일 결정했다. 그러나 자오의 유족이 그가 생전에 당 중앙에 보낸 편지 등 문건을 유서 대신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장례식에 참여할 지도부의 범위 등 의식의 ‘수위’ 조절이 끝나지 않아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21일 오후부터 빈소로 가는 골목 입구에 경찰을 배치해 다시 일반인들의 빈소 출입을 막았다.

장례장소는 국가지도자급 시설이용
일반 추모객들 빈소출입은 다시 막아

유족의 요구=자오 전 총서기의 맏아들 자오다쥔 등 유가족들은 21일 “아버지가 생전에 복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당 중앙과 여러 차례 공식서한을 주고받은 바 있다”고 밝히고 “급격한 서거로 유서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유언 대신 이 문건들을 공개해 고인의 뜻을 드러내길 원한다”고 말했다. 다쥔은 “장례절차는 중요하지 않다”며 “아버지는 15년 동안 발언을 봉쇄당했으므로 마지막 가는 길에 중국 인민에게 스스로 변론할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당국의 고민=유가족과 장례 절차를 협의해온 중국 당국은 장례식의 ‘수위’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이 이날 전했다. 당국은 혁명열사·국가지도자의 장례를 치르는 바바오산 혁명공묘에서 ‘다오비에’(송별의식. 화장하기 전 돌아간 이에게 이별을 고하는 중국식 발인)를 비공개로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이 의식의 ‘참여 범위’를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 영도자로 예우해 성대하게 치를 경우 그에 대한 추도 열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너무 소홀할 경우 유족과 지지자들의 반발로 사회불안을 낳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유골 처리도 당국의 고민이다. 이와 관련해 허중산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이날 당국의 자오에 대한 예우는 △장례식 참가자 가운데 최고위급 인사가 누구냐 △유골을 혁명공묘에 안치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빈소 풍경=빈소 공개 사흘째인 21일 오전까지 베이징 왕푸징 푸창후퉁 6번지 자오 전 총서기가 살던 집에 마련된 빈소에는 허베이, 헤이룽장, 쓰촨, 광둥 등 전국 각지와 홍콩, 싱가포르에서 온 조문객에 이르기까지 추모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특히 자오 전 총서기가 1949년 건국 직후 농업분야에서 경험을 쌓아 70년대 쓰촨 인민공사 개혁을 거쳐 총리 때도 농업개혁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전 농업부 관리와 농민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허베이성에서 온 70대의 농민 10여명은 “자오 총리의 은혜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밤차를 타고 베이징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1989년 학생운동 지도자인 왕단의 어머니 왕링윈도 20일 추모 명부에 아들과 자신의 이름을 함께 적어넣고 조문한 뒤 “이렇게 평범한 작은 집에 어떻게 15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느냐”고 말했다.


빈소 담벽의 ‘소자보’도 300여장으로 늘어났다. 장샤오쭝 중국과학지질물리연구소 연구원은 “쯔양 선생, 나는 당신이 광장에 나타났던 그날 저녁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라고 썼다. ‘기자’라고 밝힌 조문객은 “뉴스는 말살할 수 있으나 쯔양 동지는 말살할 수 없으며, 쯔양 동지를 말살하더라도 인민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쯔양 동지는 말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빈소 관계자는 “하루 1000여명 꼴로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재평가 맞물려 안팎 관심

자오, 생전 ‘북권’ 요구 서한
유족들 유언삼아 공개 요구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중공) 총서기의 유족들이 그가 생전에 당 중앙과 주고받은 서한을 유서 대신 공개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그에 대한 재평가 문제가 다시 물위로 떠올랐다.

자오 전 총서기의 맏아들 자오다쥔이 21일 당국에 공개해줄 것을 요청한 서한은 자오가 당 중앙에 대해 천안문사태 이후 당이 자신에게 씌운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는 두 가지 죄목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의 결정을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당국이 유족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아버지의 주검이 절대 (집에서) 나갈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당국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중국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오다쥔에 따르면 자오는 1989년 6월4일 인민해방군의 유혈진압으로 수백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천안문 사태가 막을 내린 직후인 그 달 23일 당 13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13기 4중전회)에 출석해 당 중앙이 규정한 ‘두 가지 죄목’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보하는 의견을 냈다. 이후 가택연금 상태에 있으면서도 당 중앙에 서한을 보내 총서기 재임시절 자신의 행위가 모두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며 줄곧 당시 결정의 부당함을 지적해왔다.

유혈진압 직후인 89년 6월23~24일 이틀 동안 이 사태에 대한 평가와 사후 처리를 위해 열린 당 13기 4중전회는 리펑 당시 총리가 중앙정치국을 대표해 제출한 ‘자오쯔양 동지가 반당·반사회주의적 동란 중 범한 과오에 관한 보고’를 통과시켰다. 이 ‘보고’는 자오가 “당과 국가의 생사존망이 걸린 운명적 시기에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키는 과오를 저질러 동란의 형성과 발전에 면할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되었으며(…)당의 사업에 엄중한 손실을 불러왔다”고 탄핵한 뒤 그의 모든 직무를 박탈하고 장쩌민 당시 상하이시 서기를 그의 후임자로 선출한다고 결정했다.

자오다쥔은 “아버지는 89년 당시 당 규약에 근거해 규약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서 당시 학생운동과 동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제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의견이 실행할 수 있는지 혹은 효력이 있는지를 떠나서, 그가 제출한 의견은 모두 당시의 동란을 어떻게하면 진정시킬 것인가를 두고 방법론을 얘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오는 또 생전에 줄곧 “나는 동란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해왔다고 자오다쥔은 덧붙였다.

그러나 유족의 요구 대로 왕복 서한이 공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은 내다봤다. 이 서한들이 공개될 경우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당의 논리만 들어온 중국 내부에서 자오의 행동이 당 규약 등에 따른 합법성을 지닌다는 변호 논리를 긍정하는 움직임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89년 당시 강경진압을 주장한 인사들과 발언내용이 드러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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