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04 18:56
수정 : 2017.12.04 20:57
|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짠보가 11월30일 당국의 철거조처로 주민들이 모두 쫓겨나고 폐허로 변한 베이징 변두리 빈곤층 마을을 찍어 올린 사진. 웨이보 갈무리
|
베이징 ‘10만 농민공’의 울분
시 외곽 철거작업 무서운 속도
‘우리는 개만도 못한가’ 농민공 공포
철거민 갈곳 없어 고향으로 떠나며
시내 물류처리센터 20곳 운영 중단
‘육아 도우미 갑자기 그만뒀다’ 글도
당국, ‘저층인구’ 금지어 SNS 통제
|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짠보가 11월30일 당국의 철거조처로 주민들이 모두 쫓겨나고 폐허로 변한 베이징 변두리 빈곤층 마을을 찍어 올린 사진. 웨이보 갈무리
|
“베이징 사람들은 키우던 개를 잃어버리면 몹시 슬퍼하죠. 우리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대하나요?”
저우신츠(35)는 4년 전 고향 동북지역을 떠나 베이징에 왔다. 짐이라곤 등에 짊어진 옷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 남편과, 지금은 9살이 된 아들과 함께 언젠가는 집을 살 만큼 돈이 모일 것이라는 꿈을 꿨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베이징 전역을 휩쓰는 철거 바람이 지금 살고 있는 월세 400위안(약 6만6000원)의 단칸방에도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빈민 거주지역 철거 작업이 2주 넘게 무서운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베이징 남부 다싱구에서 19명이 숨진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 베이징시 정부는 ‘대규모 조사·청소·정리 캠페인’을 선언했다. 40일 안에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는 시내 모든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겠다고 했다. 농촌 출신의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삼합일’(상점+창고+셋방) 형태 건물이 주요 철거 대상이다. 갑자기 ‘사흘 안에 집을 비우라’는 통지문이 문 앞에 붙고, 사흘 뒤 즉각 단수, 단전, 철거가 시작됐다. 어떤 곳에선 하루, 심지어 몇 시간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갑자기 길거리로 쫓겨난 철거민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베이징 주변의 톈진, 허베이, 허난, 산둥, 산시 등 지역들에서도 이들의 이주를 거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허베이성 랑팡의 한 공무원은 “현지인이란 증명이 없으면 건물을 빌릴 수 없다. 옷가게는 못 들어오고, 작은 가게도 안 오는 게 좋다. 왔다가 ‘정리’ 처분을 받으면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 설비는 모두 몰수다”라고 말했다. 결국 많은 이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짠보가 11월30일 당국의 철거조처로 주민들이 모두 쫓겨나고 폐허로 변한 베이징 변두리 빈곤층 마을을 찍어 올린 사진. 웨이보 갈무리
|
번듯하고 안전한 집을 빌릴 돈이 없어 ‘성중촌’(城中村)으로 불리는 변두리 마을의 낡고 위험한 집에서 살아온 이들을 베이징 당국이 의도적으로 몰아내려고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시 당국은 인구를 2300만명으로 묶어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저학력·저소득 계층을 가리켜 ‘디돤런커우’(低端人口·하층인구)라는 멸시적 용어를 사용해 이주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쫓겨난 주민 수가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농민공’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베이징을 떠나면서 시민들은 공기와도 같았던 그들의 소중함을 뒤늦게 절감하고 있다. 중국의 많은 산업,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의 다양한 사업 모델은 이들의 ‘값싼’ 노동력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베이징 일대의 택배와 물류 산업이 거의 마비됐다. 중국 최대의 물류기업 순펑은 베이징 내 물류처리센터 20곳의 운영을 중단했다. 온라인 주민 커뮤니티에도 가사도우미와 육아도우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짠보가 11월30일 당국의 철거조처로 주민들이 모두 쫓겨나고 폐허로 변한 베이징 변두리 빈곤층 마을을 찍어 올린 사진. 웨이보 갈무리
|
군사작전처럼 진행된 ‘가난한 이들 내쫓기’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확산되면서, 지난 2주 동안 웨이보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당국을 비난하고 철거민들을 지지하는 글, 철거 관련 사진과 동영상이 계속 올라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당국은 인터넷 여론 통제를 강화했다. 이번 사태를 상징하는 ‘디돤런커우’는 인터넷에서 금지어가 됐다. 상하이와 선전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위험 건물 철거 통지서’가 나붙고 철거가 시작됐다는 소식들이 검열의 틈을 비집고 전해지고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