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6 20:35
수정 : 2018.02.26 22:12
|
중국 베이징의 구·현급 인민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던 예징환이 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
[인터뷰] 전인대 ‘독립후보’였던 예징환
권력형 비리 피해 본 뒤 운동가 변신
구·현급 인민대표 두차례 도전·실패
‘독립후보’는 투표용지에 이름 빼고
후보·트표율·득표수 모두 비공개
|
중국 베이징의 구·현급 인민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던 예징환이 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
일상에서 허락되지 않은 자유가 존재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누구나 감격과 선망을 느끼지만, 이내 현실을 절망하며 괴롭기 마련이다. 중국 베이징의 활동가 예징환(65)도 그랬다. 그가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선명한 나머지, 울분과 눈물이 번갈아 솟구쳤다. 중국에서 의문점만 잔뜩 남은 인민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다가, 낙선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실패를 맛본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22일 베이징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예징환은 대만 선거 참관 당시를 상세히 회상했다. 그는 엄격한 투표소 운영과 투명한 개표 관리 상황을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다가 한숨을 내쉬곤 “그나마 대만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대만이 없었다면 중국인들은 언제 이런…”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를 향한 중국인들의 열정은 어쩌면 영원히 결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낙담했다.
예징환은 2011년, 2016년 자신이 사는 베이징에서 구·현급 인민대표 선거에 잇따라 도전했다. 중국의 중앙 입법부는 구·현급에서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인민대표들이 시·성급 인민대표를 뽑고, 이들이 다시 뽑은 전국인민대표로 구성된다. 다음달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약 3000명 규모인 전국인민대표들이 모이는 연례 회의로 우리의 정기 국회에 해당된다. 헌법상 전인대는 입법권, 결정권, 임면권, 감독권을 지닌다. 인민대표는 간접 선거를 거치긴 하지만, 그래도 기층 선거가 직접 선거인 탓에 중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형식적 요건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
2011년 7월4일 중국 베이징에서 구·현급 인민대표 선거에 '독립후보자'로 나선 13명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 직후 경찰이 들이닥쳤고, 이후 후보자들의 모임은 지속적으로 탄압받았다. 맨왼쪽이 예징환, 맨오른쪽은 중국의 인권운동가 쉬즈융. 예징환 제공
|
그러나 예징환은 중국 정치에서 유일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구·현급 선거가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자신은 적극적으로 후보로 나섰음에도 다른 후보자들은 누군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선거 뒤 발표된 최종 당선자가 누군지 몰랐던 건 당연했다. 당선자 공고는 ‘아무개 후보가 몇표를 얻어 당선됐다’는 내용이지만, 전체 투표자 수나 다른 후보자의 득표 및 기권표 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비록 후보였지만 투표용지에 이름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주민들의 추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 추천을 받으려면 자신이 속한 지역 ‘소조’의 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주민위원회가 주도해 과반도 되지 않은 소조 회의를 열어서 부결시켰다. 다만, 투표용지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적을 수 있는 제도가 있어 이웃 주민들에게 ‘내 이름을 적어달라’며 적극 권했지만, 후보 본인이 몇표를 얻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징환은 “나는 한표도 못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표도 깜깜이었다. 한 후보는 투표가 끝나자마자 현장을 쫓아가 개표를 요구했더니 “오늘 개표하지 않으니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선거 방해행위”라는 답변을 들었다. 며칠 뒤 갑자기 선거 결과 공고가 떴다. 부정 투·개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선거운동은 집회 및 시위 관련 법률에 묶여 금지돼있었다. 예징환을 포함해 베이징 시내에서 2011년엔 14명, 2016년엔 18명이 ‘독립후보자’라는 이름으로 나섰지만, 이들끼리의 모임도 원천 봉쇄됐다. 모임을 시도할 때마다 이유도 없이 끌려가 구금돼선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게 했다.
예징환은 현재의 선거 시스템을 “아주 나쁜 제도”라면서, “오직 최고지도자의 집권 안정을 위해서, 인민대표들은 모두 아무 반발 없이 지휘를 받을 사람들로 꾸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전인대는 명목상 국가 최고의 심의 및 의결 기구지만, 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고무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1979년 2월 중-베트남 전쟁 당시 전인대가 ‘자위 반격’에 관한 심의를 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신화통신>이 전쟁 개시를 알렸을 뿐이었다. 25일 발표된 ‘국가주석 임기제한’ 철폐도 전인대가 고스란히 통과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애초 공산당원 출신으로 하급기관 간부 및 국유기업 등에서 일했던 예징환은, 1998년 권력형 스캔들이었던 ‘신궈다’ 사건으로 피해를 본 뒤 피해자 모임에 참석해 발언을 했다가 처음으로 수감됐다. 그 뒤 각종 철거 사태와 2015년 대규모 변호사 연행 등 각종 사회사건과 관련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모두 6차례 수감되기도 했다. 현재 신궈다 사건 피해자 그룹과 철거민들, 연행 변호사들의 가족 등은 예징환과 함께하면서, ‘독립후보자’들을 출마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2016년 선거 당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 항의 시위를 했고, 당국으로부터 “연구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
예징환은 “10년 안에 중국 선거 제도가 개선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면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2021년으로 예정된 다음 인민대표 선거에 다시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노력해서 뭔가 당장 실현되진 않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없다면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글·사진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