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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8 17:22 수정 : 2018.04.08 20:38

선양(왼쪽) 난징대 교수가 1996년 베이징대 교수 시절 제자인 가오옌(오른쪽)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오옌은 2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선 교수는 당시 대학 당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인터넷 갈무리

“20년전 선양 교수에 성추행 당한 학생 자살” 폭로
해당 교수 발뺌 불구 당시 대학 ‘행정처분’ 밝혀져

‘중국 미투’ 해외 체류자 사건 고발 수준 머물러
당국의 사회운동 경계·극심한 신상털기 등 원인

선양(왼쪽) 난징대 교수가 1996년 베이징대 교수 시절 제자인 가오옌(오른쪽)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오옌은 2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선 교수는 당시 대학 당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인터넷 갈무리
중국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베이징대에서 20여년 전 교수의 성추행으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중국에서도 ‘미투’ 고발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뒤 현재 캐나다에 살고있는 리유유는 최근 중국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1996년 당시 마흔살로 이 대학에 재직했던 선양 교수가 자신의 고등학교·대학 동창인 가오옌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리유유의 글에는 “(선 교수가) 옷을 완전히 벗긴 뒤 그(가오옌)가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을 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그래놓고는 선 교수가 당시 성적 관계를 맺은 또다른 여성에게는, “그 아이(가오옌)는 정신병이다”라며 발뺌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충격에 빠진 가오옌은 결국 1998년 3월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리유유는 전했다.

이 글은 즉각 인터넷에서 확산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자, 선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내용은 악의적인 비방”이라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내게 고소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 교수의 주장은 금세 힘을 잃었다. 베이징대가 1998년 조사 사실을 확인하면서, 가오옌이 숨진 채 발견된 뒤 공안 수사가 진행됐고 같은 해 7월 베이징대가 그에게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 밝혀진 것이다.

선 교수가 재직중인 난징대는 6일 밤 성명을 내어 그의 직무를 중단시키고 조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대학 쪽은 그가 의도적으로 행정처분 사실을 숨긴 사실을 문제삼는 분위기로, 선 교수에게 사직을 권하고 있다. 선 교수를 겸직교수로 초빙하기로 지난해 협약을 맺은 상하이사범대학도 이를 무효화시켰다. 리유유는 각종 인터뷰에서 이같은 분위기를 반기면서도, 선 교수가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고, 베이징대 당국이 당시 관련 사건의 조사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가오옌의 사망 20주기인 지난달 11일 부모가 무덤 앞에 섰다. 가오옌은 베이징대 재학 시절 교수의 성추행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뒤 괴로워하다가 1998년 목숨을 끊었다. 인터넷 갈무리
이번 사건은 지난해 미국 등에서 시작된 ‘미투’ 캠페인이 중국에도 일부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 1월 천샤오우 베이징항천대 교수는 옛 제자로 미국에 체류중인 뤄첸첸이 12년 전 그의 성폭행 시도를 ‘고발’하자, 모든 직무와 자격을 박탈당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유학생이 많은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의 쉬강 교수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고, 쉬 교수는 그동안 맡아왔던 선전비엔날레 큐레이터직에서 해고됐다. 하지만 대학 내 ‘미투’에서 더이상 확산하지 않고, 중국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는 중국인들이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중국판 미투’의 한계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중국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어떤 방식의 사회운동도 허용하지 않는 중국 당국의 정치적 경직성이 원인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영언론을 비롯한 중국 매체들은 세계의 ‘미투’ 현상, 특히 한국 사회의 ‘미투’ 격동도 꽤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4일 <환구시보>가 “사회운동은 성폭행을 줄이는데 제한된 역할을 할뿐”이라며 제도적·법적 뒷받침을 우위에 놓은데서 보듯, 당국이 처리하는 것이 옳으며 사회운동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태도였다. 리유유의 글을 비롯해 논란이 되는 글은 온라인에서 대개 즉시 삭제되는 것도 현실이다. 다른 나라들과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중국은 ‘인육검색’으로 불리는 ‘신상 털기’가 극심한 탓에 피해자들이 나서기가 쉽지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엔 2008년 14살이던 여성이 아버지, 할아버지, 교사, 이웃 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16명이 구속된 ‘탕란란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이름을 바꾼 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 매체가 보도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선 매체마저 신상 털기에 호응한다는 비난이 나왔다.

2008년 당시 14살이던 탕란란(오른쪽)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이웃아저씨, 교사, 관료 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이와 관련해 16명이 구속됐다. 탕의 어머니 완슈링(가운데) 등은 당시 탕란란의 이야기가 조작된 것이었다며 항소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갈무리
이밖에 기본적으로 남성 위주의 강력한 중앙집권 형태인 정치 구조와 이른바 씨줄날줄처럼 얽힌 ‘관시’(관계)가 경제생활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사회 구조 탓에 ‘미투’와 같은 사회운동이 확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도 아직 모자라다는 평가도 있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지난해 10월 서구권의 미투를 다루면서 “중국의 전통적 가치와 보수적 태도가 남성의 부적절한 행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가 뭇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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