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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9 15:46 수정 : 2018.04.19 15:53

중국 쓰촨성 하오이성 연구소 “바스락 소리” 가득
호흡기·소화기 약효 ‘캉푸신예’ 물약 제조에 쓰여
‘유전자 조작 수퍼바퀴벌레 지구 위협’ 우려도

“늦가을 깊은 대나무숲 속에 서있는 것 같다. 찬바람이 불고 잎이 바스락거린다.”

서정적인 표현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무수한 바퀴벌레 떼의 움직임을 묘사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소름이 돋는다. 2011년 중국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가 쓰촨성 시창의 하오이성 바퀴벌레 연구소에 대해 보도했던 기사다. “숨을 멈추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손전등을 비추면 바퀴벌레들은 도망친다. 불빛이 닿는 곳마다 바람이 잎을 스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오늘, 하오이성 연구소는 세계 최대의 바퀴벌레 연구소로 성장해 한 해 바퀴벌레 60억마리를 배양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연구소가 배양을 위해 연중 따뜻하고 습도 높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며, 바퀴벌레들은 햇빛을 차단한 채 감옥처럼 완전히 봉쇄된 공간에 서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배양된 바퀴벌레는 의약품 원료로 쓰이고 있다. 적당한 크기로 자란 바퀴벌레를 기계로 분해해 ‘캉푸신예’라는 물약을 만드는데, 정부 보고서를 보면 이 연구소는 바퀴벌레만을 재료로 한 캉푸신예로 43억위안(약 7282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난다. 포장용기의 설명을 보면, 캉푸신예는 찻물 색깔에 달짝지근하지만 약간 비린내가 나며, 의사 처방에 따라 호흡기, 소화기 등 질환에 약효를 낼 수 있다.

중국에서 식용·의료용 바퀴벌레의 역사는 길다. 남부 농촌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어린이들이 감염에 의한 발열, 복통 등의 증상을 보일 때 바퀴벌레와 마늘을 섞어 먹이곤 한다. 정부까지 바퀴벌레 연구에 투자하고 나서면서 수십 가지의 치료용 단백질과 의학적 잠재 가치가 큰 생화학 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피부와 점막, 내장 내벽의 세포막 등의 재생 촉진이나, 화상, 위염 등에 좋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중국의학과학원 관계자는 캉푸신예에 대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특정 증상에 대한 효과는 분명하며 분자과학과 대규모 임상 적용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국 제약회사 하오이성의 바퀴벌레 원료 물약 캉푸신예. 1병(100ml)당 35위안(약 5930원)으로, 성분에는 이질바퀴 외 다른 것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인터넷 갈무리
캉푸신예의 원료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은 아직 대중적 거부감이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학과학원 인사는 “대부분 사람들이 역겹다고 생각하는 재료를 쓰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물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며 “중국에서도 대부분 환자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용기의 설명에 유일한 재료로 제시된 학명(periplaneta americana)을 사전에서 찾아보고는 모조리 뱉어버렸다는 ‘후기’도 있다. 1년 전 처방을 받고 출산 뒤 회복을 위해 캉푸신예를 복용한 환자는 “모르고 사는 게 좋은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 시설의 사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재 이 연구소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바퀴벌레 배양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있다. 7년 전에도 이미 <광명일보>는 “시설 안에 사람은 거의 없다. 선반과 바닥과 천정에 바퀴벌레가 가득하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만약 오작동 같은 사고나 지진 등의 천재지변으로 바퀴벌레 수십억마리가 연구소 밖으로 풀려나오게 되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소가 유전자 조작으로 바퀴벌레 배양을 거듭해서 촉진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 거대하고 생식 능력이 우수한 ‘슈퍼 바퀴벌레’가 등장해 지구를 위협할 것이란 염려도 있다. 연구소 쪽은 바퀴벌레는 공룡 시기부터 모든 극한 상황을 이겨왔으니 “모든 바퀴벌레는 슈퍼 바퀴벌레”라면서, “대자연이 이미 모든 것을 설계했고,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건 사실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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