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사관 존재감 미미…“유엔 제재 이후 조용”
“북미회담에 싱가포르도 역사책에 남을 것” 70% 지지
회담장 후보지 샹그릴라호텔 등은 당일 예약 불가능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로비 전경. 싱가포르/김외현 특파원
13일 오전 주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시내 한복판의 건물은 한산했다. 일요일 아침이어서인지 가게는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이 건물의 길 건너편엔 싱가포르 의회가 있고, 그 너머로는 옛 도심 ‘래플스 플레이스’가 자리하고 있다. 옛 도심 쪽을 향하니 유명한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이 그대로 보였다.
건물에 북한대사관이 입주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밖에 국기가 걸려 있지 않은 것은 물론, 1층 안내대 뒤에 붙어 있는 입주회사 목록에도 북한대사관의 이름은 없었다. 안내대에 앉아 있는 경비원은 “모든 입주사가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책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손글씨로 적은 목록 중에 ‘1501호’에 북한대사관이 입주해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북한대사관은 2016년 이곳으로 이사했다. 같은 층 이웃은 어학원, 식음료 회사 등이었다. 이 건물엔 일본 오키나와현 정부, 남오스트레일리아주 정부 등도 입주해 있다.
정원 쪽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전경. 잔디밭에 대표적인 조형물 ‘오키드’가 보인다. 싱가포르/김외현 특파원
앞선 11일 일부 언론이 북한대사관을 취재했던 탓인지, 이날은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북한대사관에서 기자들의 접근을 막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경비원은 “어제도 누군가 찾아왔길래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억지로 올라갔다. 그러자 대사관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고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결국 그 사람은 경찰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북한대사관은 싱가포르 내에서 그다지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한 택시 기사는 “북한대사관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린다웨이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한겨레>에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이번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선정 소식을 듣고서야 존재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많다”며 “학계나 정·관계에서도 전공으로 다루는 사람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한인회 관계자는 “예전엔 북한 사람들이 여기서 인삼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유엔 제재가 강화되면서 무역도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유엔 제재가 한층 강화된 지난해 11월 전까지 북한의 7대 무역 상대국이었다지만 지금은 북한 식당도 없다.
북-미 정상회담은 연일 주요 매체들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12일 현지 언론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시민 140명을 조사해, “약 70%가 이번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시민들은 지지 이유로 싱가포르가 “깨끗한 친환경 도시의 이미지뿐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역사에 남을 일인 만큼, 싱가포르도 함께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 견해를 보인 20%는 “두 지도자가 모두 독특한데다, 싱가포르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을 것”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싱가포르는 그동안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회담의 무대가 돼왔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만남 전에도, 양안(중국과 대만)의 첫 접촉이었던 1993년 왕다오한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과 구전푸 대만 해협교류기금회 이사장의 만남도 싱가포르에서 이뤄졌다. 현지 매체들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고 중립적’이란 명성이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회담장 후보지로 꼽히는 샹그릴라호텔과 마리나베이샌즈호텔 등에선 아직 회담의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13일 돌아본 두 호텔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일반 관광객들이 가득했을 뿐, 보안 강화 조처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간간이 비가 내려 습도가 높고 기온이 섭씨 30도에 이르는 탓인지, 두 정상의 ‘친교 산책’ 후보지로 거론되는 샹그릴라호텔 야외 정원이나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옆 가든베이공원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두 호텔 모두에서 회담 당일인 다음달 12일 온라인 예약은 불가능해졌다. 호텔 쪽이 예약을 차단한 것인지, 취재진 등의 예약이 몰린 탓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샹그릴라호텔은 “장소와 관련해 확정된 연락을 받은 바 없으며, 회담과 관련해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자료를 냈다.
싱가포르/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냉전해체 프로젝트 ‘이구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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