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15:38
수정 : 2018.05.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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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융녠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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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융녠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인터뷰
북-미 정상회담 발표 뒤에야 책임감 느껴
‘핵기술 민수용 전환’ 선에서 합의 전망
북 개혁·개방은 성공…권력집중과 중·베트남 선례 덕
중국 모델 등 ‘진정한 동아시아 질서’ 구축 진행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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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융녠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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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국제정치 학자인 정융녠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장(사진)은 1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방기해왔다. 또다시 책임을 미룬다면 북한이 ‘미국의 첨병’이 돼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행히 중국이 책임을 인식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한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비핵화 합의는 어느 선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나?
“남북한, 미, 중이 갖고 있는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르다. 미국이 바라는 ‘완전한 포기’는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 기술은 인정하되 군사용에서 민수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결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합의가 아닐까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 자체보다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우려한다.”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최근 몇해 동안 권력 집중·강화를 진행해온 중국식 모델이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물론이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주목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구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 우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는 성장을 위한 응집력을 제공할 것이다. 중국·베트남 등 참고할 선례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들 나라들은 따라갈 모델이 없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역내 평화와 안정이라는 환경이다. 북한이 발전하는 동안 한국도,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등이 주장해 온 ‘중국 역할론’(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은.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중국도 책임을 (한반도 문제에)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중요한 태도 변화다.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미국에 미뤄왔는데, 이젠 ‘내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북-미 정상회담이 발표된 뒤에야 나타났다. 북한이 중국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임하거나, 미국이 북한을 통해 중국을 다루려 든다면, 중국은 불리해진다.”
-중국이 다급했다는 뜻인가?
“미국은 지난해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미국의 주적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중국보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미사일은 안 되지만 핵 보유는 허용한다는 전제로 동쪽(한·미·일)으로의 진출을 돕고 나섰다면, 중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을 향한 미국의 교두보가 되는 악몽 같은 상황이다. 중국으로선 충분히 사활을 걸 일이었다.”
-북한도 대중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을 텐데?
“물론, 양쪽이 모두 필요했을 것이다. 중국이 없으면 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의 미국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미국의 ‘참수작전’이 입에 오르내렸었다. 미국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진행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도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북한이 미국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반세기가 넘는 대립을 거쳐 이렇게 신뢰도가 낮아진 상태인 만큼, 김정은 위원장도 중국과 사전 접촉을 통해 김 위원장 자신과 가족, 체제 등의 안전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다짐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싱가포르에 오는 데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본인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부분도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
글·사진 싱가포르/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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