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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0 17:54 수정 : 2019.06.10 20:49

홍콩 당국이 제정을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9일 저녁 도심을 가득 메운 채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권 침해 우려 큰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 시위
1997년 반환 뒤 최대 규모…홍콩 시민사회 부활 신호탄

“홍콩이 베이징·상하이처럼? 끝까지 이곳 지키겠다”
“당연히 누려온 권리 박탈 가능성…절박감에 참여”

중 관영 매체 “외부 불순세력 홍콩 혼란 부추겨”
친중파 홍콩 행정장관 조례 강행 의지 다시 밝혀

홍콩 당국이 제정을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9일 저녁 도심을 가득 메운 채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 시민 7명 중 1명이 거리로 나섰다. 억눌러온 반중 정서가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최대 규모 시위가 진행된 9일 저녁 홍콩 도심은 흰옷으로 하얗게 물결쳤다.

48개 시민·사회단체 연대 조직 ‘민간인권전선’이 개최한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 시위에는 약 740만 홍콩 인구 가운데 103만명(경찰 추산 23만명)이 참가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주최 쪽 제안으로 빛을 상징하는 흰색 셔츠 차림을 한 시민들은 “중국 송환 반대”,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후 2시30분께 행진을 시작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첫 대열이 행진에 나선 뒤 마지막 대열이 출발할 때까지 4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밤 10시께 집회가 마무리된 뒤 ‘홍콩 독립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남은 시위대가 입법회(의회)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곳곳에서 10일 새벽까지 산발적 충돌이 이어졌다. 대만 타이베이, 독일 베를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12개국 29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 연대집회가 열렸다.

주최 쪽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들은 범죄 혐의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게 하는 조례에 대한 반감의 정도를 보여줬다. 홍콩인들은 이 조례를 중국이 악용할 것이라고 본다. 홍콩의 반중 세력을 넘기라고 요구할 수 있고, 중국 본토의 인권운동을 돕는 홍콩인들도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중국 사법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홍콩인들이 “이건 생사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달 안에 조례를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홍콩 정부는 범죄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일반 국가들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딸과 행진에 참가한 사업가 벤량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인터뷰에서 “예전엔 홍콩 시민들이 자신들 권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젠 홍콩도 상하이나 베이징처럼 돼가는 것 같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미셸 람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누려온 권리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절박감에 참을 수 없어 나왔다”고 했다.

이번 시위는 2014년 ‘우산혁명’ 뒤 침체를 보여온 홍콩 시민사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도 평가받는다. 4일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30돌 촛불집회에도 우산혁명 뒤 최대인 18만명이 참여했다. 2014년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것은 그해 6월 중국 국무원이 <일국양제 백서>로 “홍콩의 자치는 분권화된 권력이 아니며, 위임에 따라 지역 문제를 처리하는 권한일 뿐이다. 홍콩에 대한 포괄적 사법 관할권은 중앙 지도부에 있다”고 밝힌 게 결정적이었다. 이에 홍콩인들은 행정장관(특별자치구 수반) 직선제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79일간 도심 점거 시위를 했으나 별 성과를 보지 못했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 당국의 전폭적 지지 속에 친중파 람이 당선됐고, 우산혁명 지도부는 공공소란죄 등을 이유로 최근 실형을 선고받았다.

우산혁명 실패 뒤 열패감은 ‘이민 열풍’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홍콩 중문대가 올해 1월 내놓은 708명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34%가 ‘기회가 되면 이민을 가겠다’고 답했다.

이번 시위에 중국 관영 매체는 “불순한 외부 세력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0일 “멀쩡한 사람이라면 조례가 홍콩의 법치를 강화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입법이란 점을 잘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람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에서 이 조례에 대해 어떤 지시도 안 받았다”, “분명한 양심과 홍콩에 대한 책임을 위해 이를 추진하고 있다”며 조례 제정 강행 의지를 밝혔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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