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오래간만에 도라산역을 찾았다. 도라산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한 후 신라의 도읍을 사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어찌 보면 고려 삼국통일을 지켜본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역사와 인연이 닿아서일까, 도라산역은 이제 남북한 통일을 엮어갈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라산역에서 눈에 띈 것은 바로 박근혜 정부 때 세운 통일플랫폼이었다. 독일 장벽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고 동서독을 오갔던 미군 화물열차가 이색적이었다. 화물열차 내부에는 통일 전의 동서독 철조망, 동독 경찰의 제복과 같은 동서독 시절의 물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의문이 생겼다. 왜 남북한 통일을 엮을 플랫폼에 동서독 문물이 자리를 잡아야 할까? 은연중 남북통일을 동서독 통일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은 아닐까? 그동안 한국의 정상들은 독일을 찾아 “통일선언”을 하며 독일 통일 경험에서 남북통일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독일 통일을 남북통일의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동서독 통일을 동독에 대한 서독의 체제 흡수 방식의 통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이런 인식은 남북관계의 본질인 ‘제로섬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다. 2045년까지 통일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을 비난했는데, 밑바닥에는 바로 이 제로섬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남북한은 서로 통일을 강조하면 할수록 상대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이 추진하려는 남북 경제협력을 북한이 되레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북의 제로섬 게임 구조는 냉전시기에는 미-소의 세력균형 틀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왔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늘땅만큼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북한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구도 속에 갇혔고 남북한 경제차이는 일사천리로 커져갔다. 외교적, 경제적, 안보적 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북한은 핵개발로 이 무너진 균형을 되찾으려 하였다. 북한은 과연 북핵이라는 만능 보검으로 세력균형을 찾은 것일까? 북핵 30년에 북한은 최빈국의 기아 상태까지 겪으며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지금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제재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 북핵 시작의 시점에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졌고 한국은 그것을 롤모델로 삼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향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은 그 진수였다. 진보정권의 ‘햇볕정책’도 내용은 역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다. 그만큼 통일에 한해 한국 사회의 제로섬 인식은 굳건한 것이었다. 북한의 안보 우려가 가시지 않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이 제로섬 관계를 뛰어넘는 것이라 하겠다. 냉전이 종식된 후 북한은 순식간에 벌어진 격차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핵개발을 했지만 안보 우려는 오히려 가중돼왔다. 그렇기에 북한은 자기들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자면 북-미 관계 개선이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절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남북 서로의 제로섬 의식이라 하겠다. 그 온상은 바로 남북한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일 것이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한국이 남북관계와 통일을 주도하겠다고 하면 할수록 열세의 북한은 트라우마를 안게 되기 마련일 것이다. 결국 남북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나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 것 같다. 도라산역에 이어 다시 찾은 판문점은 초소도, 무장도 철거된 아늑한 평화의 분위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하였다. 남북이 제로섬 관계를 뛰어넘는 시범구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 |
[세계의 창] 도라산역에서 본 남북관계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오래간만에 도라산역을 찾았다. 도라산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한 후 신라의 도읍을 사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어찌 보면 고려 삼국통일을 지켜본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역사와 인연이 닿아서일까, 도라산역은 이제 남북한 통일을 엮어갈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라산역에서 눈에 띈 것은 바로 박근혜 정부 때 세운 통일플랫폼이었다. 독일 장벽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고 동서독을 오갔던 미군 화물열차가 이색적이었다. 화물열차 내부에는 통일 전의 동서독 철조망, 동독 경찰의 제복과 같은 동서독 시절의 물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의문이 생겼다. 왜 남북한 통일을 엮을 플랫폼에 동서독 문물이 자리를 잡아야 할까? 은연중 남북통일을 동서독 통일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은 아닐까? 그동안 한국의 정상들은 독일을 찾아 “통일선언”을 하며 독일 통일 경험에서 남북통일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독일 통일을 남북통일의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동서독 통일을 동독에 대한 서독의 체제 흡수 방식의 통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이런 인식은 남북관계의 본질인 ‘제로섬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다. 2045년까지 통일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을 비난했는데, 밑바닥에는 바로 이 제로섬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남북한은 서로 통일을 강조하면 할수록 상대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이 추진하려는 남북 경제협력을 북한이 되레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북의 제로섬 게임 구조는 냉전시기에는 미-소의 세력균형 틀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왔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늘땅만큼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북한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구도 속에 갇혔고 남북한 경제차이는 일사천리로 커져갔다. 외교적, 경제적, 안보적 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북한은 핵개발로 이 무너진 균형을 되찾으려 하였다. 북한은 과연 북핵이라는 만능 보검으로 세력균형을 찾은 것일까? 북핵 30년에 북한은 최빈국의 기아 상태까지 겪으며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지금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제재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 북핵 시작의 시점에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졌고 한국은 그것을 롤모델로 삼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향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은 그 진수였다. 진보정권의 ‘햇볕정책’도 내용은 역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다. 그만큼 통일에 한해 한국 사회의 제로섬 인식은 굳건한 것이었다. 북한의 안보 우려가 가시지 않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이 제로섬 관계를 뛰어넘는 것이라 하겠다. 냉전이 종식된 후 북한은 순식간에 벌어진 격차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핵개발을 했지만 안보 우려는 오히려 가중돼왔다. 그렇기에 북한은 자기들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자면 북-미 관계 개선이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절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남북 서로의 제로섬 의식이라 하겠다. 그 온상은 바로 남북한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일 것이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한국이 남북관계와 통일을 주도하겠다고 하면 할수록 열세의 북한은 트라우마를 안게 되기 마련일 것이다. 결국 남북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나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 것 같다. 도라산역에 이어 다시 찾은 판문점은 초소도, 무장도 철거된 아늑한 평화의 분위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하였다. 남북이 제로섬 관계를 뛰어넘는 시범구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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