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2 14:07
수정 : 2019.10.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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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홍콩 췬안 지역 고등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놓고 전날 벌어진 시위 도중 경찰의 총격에 쓰러진 동료 학생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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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근접 거리에서 시위대에 총격
고무탄총 등 비살상무기 대신 권총 사용
경찰 “합리적, 합법적 대응”…시위대 격앙
진상조사 불가피…독립조사위 구성 요구 거세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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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홍콩 췬안 지역 고등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놓고 전날 벌어진 시위 도중 경찰의 총격에 쓰러진 동료 학생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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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주째로 접어든 홍콩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겨냥해 실탄을 발사한 사상 초유의 사건에 대해 경찰 쪽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대응”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격앙된 시위대 쪽은 “피의 대가를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홍콩 정국이 벼랑 끝으로 다가선 모양새다.
2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공개한 전날 홍콩 췬안 지역 타이호 거리에서 벌어진 사건 현장 영상을 보면, 사건 발생 직전 시위대 10여명이 고립된 진압경찰을 공격했다. 커다란 방패를 든 경찰은 이내 달아나기 시작했다. 시위대에 쫓기던 경찰이 넘어지자, 쫓아온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일부 시위대는 망치와 스패너를 손에 들었다. 경찰은 필사적으로 방패로 막고 있다.
곧바로 최루탄이 날아들었고, 경찰 지원인력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넘어진 경찰을 공격하던 시위대가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 총격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현장에 들이닥친 경찰이 한 시위 참가자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오른손으로 권총을 꺼내 든 그는 시위 참가자가 쇠파이프로 응수하자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에 맞은 시위 참가자가 넘어졌다. 경찰이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사한 사상 초유의 사건은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졌다.
실탄이 발사되자 위협을 느낀 시위대가 흩어졌다. 시위대 1명이 쓰러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가서자 다른 경찰이 발로 걷어차 넘어뜨린 뒤 몸을 눌러 제압했다. 경찰은 총에 맞고 쓰러진 시위 참가자에게 즉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장 화면을 보면, 총을 쏜 경찰은 비살상용 고무탄을 쏠 수 있는 총기도 손에 들고 있었다. 옆구리에는 최루액 발사기도 차고 있었다.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시위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현장 도착 당시부터 이미 권총을 빼 들고 있었고, 시위대를 향해 아무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홍콩 경찰 쪽은 이날 몽콕, 타이호, 샤추이, 샤틴 등지에서도 실탄을 ‘경고 사격’했다고 밝혔다. 시위대를 직접 겨냥한 총격까지 발사된 실탄은 모두 6발이나 됐다. 홍콩 시민사회 연대체인 ‘민간인권전선’은 2일 전날 시위로 모두 104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 가운데 2명은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총격을 받고 쓰러진 피해자는 치완 지역의 공립 호췬유 기념 고등학교 2학년생 창치킨(Tsang Chi-kin)으로 확인됐다. 그는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의 응급치료를 받은 뒤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심장·폐 외과 전문의가 없었다. 그는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한 의료진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폐에 총상을 입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병원을 옮겨 다니며 시간을 지체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이 공개한 피해자의 흉부 엑스(X) 선 사진을 보면, 왼쪽 폐 부위 두 곳에 총알 파편이 박혀 있다. 한 의료진은 신문에 “심장을 겨우 빗겨 갔다”고 전했다. 파편 제거를 위한 응급 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다행히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경찰 당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동료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순간이었고, 사전에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실탄을 쏜 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 영상을 보면, 해당 경찰은 사전경고를 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당시 총을 쏜 경찰과 총을 맞은 시위대는 채 1m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따라서 총격 당시 상황과 실탄 발사의 적절성을 따지기 위한 진상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시민들 사이에서 경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탓에, 경찰 자체 조사만으론 모든 의문을 해소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결국 시위대의 ‘5대 요구’ 가운데 하나인 경찰의 과잉 폭력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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