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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산당 공안 위원회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용소 운용 지침 ‘전보’(왼쪽)와, 국제탐사보도협회가 이를 영문으로 옮긴 번역문. ICIJ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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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탐사보도협회, 중국 비밀문건들 입수
“탈출 방지, 기밀 유지, 철저 교화” 지침
기상·점호·식사·수업·취침까지 ‘깨알 규정’
“과거 행동 반성·변화 위한 철저한 교육”
인권단체 “심리적 고문…인권침해 증거”
중 “가짜뉴스…테러 예방 교육시설”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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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공산당 공안 위원회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용소 운용 지침 ‘전보’(왼쪽)와, 국제탐사보도협회가 이를 영문으로 옮긴 번역문. ICIJ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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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수용소에서 “심리적 고문”에 해당하는 강압적이고 치밀한 세뇌교육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식 문건들이 대거 폭로됐다.
세계 17개 매체가 참여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탐사보도협회)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용소 운영 지침이 담긴 중국 정부의 기밀문서들을 입수해 24~25일 일제히 보도했다. 탐사보도협회에는 한국의 <뉴스타파>,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프랑스 <르몽드>,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 등이 참여하고 있다.
탐사보도협회가 ‘차이나 케이블스(The China Cables)’로 명명한 이 문건들은 2017년 당시 주하이룬 신장자치구 공산당 부서기가 서명한 9쪽짜리 지시 문건을 비롯해, 당 공안위원회가 산하 공안당국들에 배포한 전문들과 공고문, 법원의 사상 범죄 판결문 등이 포함돼 있다. 중국 당국이 직업훈련센터라고 주장하는 대규모 수용 시설에는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족 수십만명을 포함해 수십만 명의 중국 내 소수민족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 문건 중 ‘전보’라는 제목의 업무 지침서는 수용소 운영요원들을 대상으로 수용자 탈출 방지, 수용시설의 존재 자체의 철저한 기밀 유지, 강제 세뇌교육 방식, 전염병 발생 통제, 수용자들의 친척 면회, 심지어는 화장실 사용을 언제 허락할 것인지까지 깨알 같은 지시사항을 담고 있다. 2017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운영 지침에는 수용자에 대한 상벌 부과의 기준인 ‘행동 수정 점수제’를 시행한 사실도 담겨 있다.
철저한 보안과 엄격한 규율 집행, 위반자 처벌을 뼈대로 한 수용자 행동 수칙들은 숨이 막힐 정도다. 아침 기상에서부터, 점호, 세면, 정리 정돈, 식사, 교화수업, 취침, 문 닫는 것까지 행동 하나하나에 ‘규정’이 있다. 수용자들의 침상, 줄 서는 위치, 강의실 좌석, 작업 위치 등은 각자 지정돼 있으며 바꿀 수 없다. 또 “학생들의 도주를 막고 생활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기숙사 출입문은 반드시 ‘이중잠금’을 하도록 했다. 2명의 보안 요원이 열쇠를 각각 하나씩 관리하도록 해, 이들이 함께 있어야만 출입문을 여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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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슈퓨에 지어진 수용 시설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 3월에만도 논밭이었던 지역에 11월엔 건물들이 가득 들어섰다. ICIJ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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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 감금과 감시에는 첨단 기술도 동원됐다. 기숙사와 교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사각지대 없이 전면 감시하도록 했을 뿐아니라, 인공지능을 이용한 방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시스템을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신장 위구르 주민들을 선별, 구금하도록 했다.
운영 지침에 따르면 수용자들은 최소 1년간 수용시설에 갇혀 있어야 했다. 시설 운용자들은 “교육생들이 과거 자신의 불법적이고 범죄적이며 위험한 활동을 깊이 이해하도록 회개와 고백을 고취”하며 “이해 부진, 부정적 태도, 저항감을 보이는 수용자들에 대해선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교육하고 변화시킨다”는 게 주요 임무였다. “수용자들의 만다린어(표준 중국어) 학습을 최우선으로 하라”거나 “교육생들이 진정으로 변화하도록 고무하라”는 지침은 소수민족의 중국 동화 정책의 핵심으로 꼽힌다.
수용시설의 규모를 짐작게 하는 문건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2017년의 어느 한 주일 새에만 신장 자치구 남부 지역에서 1만5000명이 수용소에 들어온 것으로 기재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소피 리처드슨 중국담당국장은 <비비시>(BBC) 방송에 “이번 문건들은 거대한 인권침해가 기록돼 소송이 가능한 증거물”이라며 “모든 수용자들이 최소한 ‘심리적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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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직업훈련소’ 위성사진.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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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오아이스 도시 카슈가르슈 거리를 중국 공안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ICIJ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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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탐사보도협회가 폭로한 이번 문건들을 “순전한 날조이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지난 주말 영국 일간 <가디언>의 질의에 대해 “신장에는 이른바 ‘수용소'라는 곳이 없으며, 직업교육훈련센터는 테러리즘 예방을 위해 설립됐다"고 밝혔다. 중국 대사관 쪽은 “1990년대부터 2016년 사이 신장 지역에서는 수천 건의 테러사건으로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정부가 조처를 취한 이후 지난 3년간 단 한 번의 테러사건도 없었다”며 “정부가 취한 예방적 조치는 종교집단 근절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대사관은 또 “교육생들은 다양한 강좌를 수강할 수 있고, 개인적 자유가 완전히 보장돼 있다"고 밝혔다.
탐사보도협회는 이 문건들의 진위 여부를 복수의 언어학자와 전문가들이 검토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업체인 에스오에스(SOS) 인터내셔널의 문서 전문가인 제임스 멀브넌은 이번에 유출된 중국어 문서가 “진본이 확실"하다며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중국 정부 기밀 문서의 양식에 100% 부합한다"고 말했다.
위구르족은 오늘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속한 중앙아시아에서 1000년 넘게 살아왔으며 튀르크어계 고유어를 사용한다. 무슬림 무역상들과 접촉 후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약 1100만명의 주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탐사보도협회는 위구르족이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경제적 소외와 정치적 차별을 받아 왔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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