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피아난 “일부라도 빨리”
약속불이행 우려 조바심 남아시아 대재앙을 계기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쏟아낸 이례적인 지원금 약속은 7일 현재 거의 5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 액수는 이번에 피해를 본 13개국 이재민 500만명에게 1인당 1천달러씩을 지원할 수 있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1천달러면 웬만한 개도국 1인당 연간 평균소득 수준을 넘는 액수다. 그러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6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재난구호 특별정상회의에서 경쟁적으로 지원을 공약한 부자 나라들한테 우선 6개월 동안 이재민들의 기본적인 인도주의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9억7700만달러만이라도 서둘러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현금과 물품 지원 약속이 있었는데, 아직 이행되지 않은 약속들은 현금으로 조속히 이뤄졌으면 한다”며 “과거에는 약속과 이행에 차이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난 총장이 각국이 약속한 지원금의 5분의 1이라도 빨리 달라고 한 속사정은 한마디로 약속이 공수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국의 지원 약속에는 당장 지원하는 긴급재난구호 자금뿐 아니라 3~5년을 목표로 한 장기 개발원조 등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를 통상적으로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도 꼬리표가 붙은 지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무상 원조인 경우도 자국 상품을 강제로 구매하게 하는 식으로 실제로는 80%를 환수하는 편법이 이용되어 왔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이번처럼 지원 약속이 경쟁적으로 쏟아지지만, 각국의 약속 이행은 그처럼 신속하지 않다. 영국의 구호기관인 ‘크리스천 에이드’의 맬컴 로저스는 <비비시방송>과의 회견에서 △수혜국들이 많은 국제적 지원을 받아들일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고 △지원국들이 내세운 과도한 조건이 맞지 않아 취소된 경우도 있으며 △한정된 재원의 지원금이 또다른 재난으로 돌려진 경우들이 있다며 지원 약속이 잘 지키지지 않은 이유를 지적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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