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
일본 관리 ‘NHK 위안부 프로그램’에 외압 파문 |
일본 집권자민당 실력자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NHK 특집프로그램 내용을 문제삼아 시정을 요구, 내용이 변경돼 방영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프로그램 편집에 대한 외부간섭을 금지한 일본 방송법에 명백히 저촉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 BBC와 함께 공영방송의 모델로 꼽히는 NHK 프로그램에 집권당 실력자가 일종의 ‘사전검열’을 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프로그램에 외압을 행사한 사람은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다.
나카가와 경제산업상은 당시 위안부문제 등이 교과서에 어떻게 기술돼 있는 지를조사하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대표였다. 당시 관방부장관이던 아베 간사장 대리는 이 모임의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들의 외압 행사 사실은 당시 프로그램 제작 현장 책임자가 작년 말 NHK 내부고발창구인 ‘법령준수추진위원회’에 ‘정치개입을 허용했다’며 조사를 요구함으로써 밝혀졌다.
◆프로그램 내용
4회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재판할 것인가’의 2회분으로 2001년 1월 30일 밤 NHK 교육TV를 통해 방영됐다. 이에 앞서 2000년 12월 시민단체가 도쿄(東京)에서 개최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소재로 다룬 것이었다.
제작이 진행되던 2001년 1월 중순께 방송내용 일부를 알게된 우익단체 등이 NHK에 방송중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방송국내에서 ‘내용을 더 객관적으로 하기 위한 작업’이 이뤄졌다. 방송 이틀전인 28일 밤 44분짜리 프로그램이완성돼 교양프로그램 부장의 승인을 받았다.
◆압력행사
방송 전날인 29일 오후 나카가와와 아베 의원이 당시 방송총국장(현 NHK 출판사장)과 국회담당 국장(현재 이사) 등 NHK간부를 의원회관으로 불렀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방송하지 말라”, “공평하고 객관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나카가와 의원은 “그렇게 못하겠으면 방송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NHK간부는 “교양프로그램으로 방송전에 불려 가기는 처음이었다”면서 “압력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프로그램 제작국장이 “국회에서 NHK예산이 심의되는 시기에 정계와 싸울 수 없다”면서 내용을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프로그램을 미리 본 방송총국장 등은 ▲민중법정에 비판적인 전문가의 인터뷰를 늘리고 ▲일본군인의 강간과 위안부제도는 ’인도에 어긋나는 죄’이며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민중법정의 결론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 결국 40분짜리로 단축돼 방송됐다.
◆당사자들의 변
나카가와 경제산업상은 NHK간부와 면담한 사실을 인정한 후 “모의재판을 하는 건 자유지만 공공방송이 그걸 방송하는 것은 방송법상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할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중지를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NHK측이 이렇게 이렇게 고치겠다고 설명하길래 ‘안된다’고 말했다”고 시인했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편향된 보도라는 걸 알고 NHK로부터 설명을 들었다”면서 “국회의원으로서 해야할 의견을 말했을 뿐 정치적 압력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러나 프로그램 내용을 미리 알게된 경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학계의견(핫토리 다카아키(服部孝章) 릿쿄(立敎)대교수)
NHK의 예산 심사,승인권을 가진 정치가가 방송전에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방송국에 의견을 제시하는것은 미디어에 대한 사전검열이나 다름없다. 비판은 방송후에 하면 된다. NHK는 ‘자주적으로 편성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NHK는 정계를 의식할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보고 확실히 조사해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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