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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2 23:50 수정 : 2005.01.12 23:50

인도의 대표적 주간지인 인디아 투데이가소니아 간디(58) 인도 집권연정 의장을 지난해의 `뉴스메이커'로 선정했다.

12일 인디아 투데이 최신호는 `소니아 간디 : 인도의 불사조'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간디 여사가 `버려진 희망'을 `되찾은 본가'로 바꿔 놓았다고 논평하고이탈리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여학생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기나긴 인생역정을 소개했다.

이탈리아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니아 마이노'란 이름의 여대생이인도의 `케네디 가문'으로 통하는 간디 집안의 `황태자'인 라지브를 처음 만난 곳은영어를 배우러 유학갔던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식당에서였다.

지난 1968년 라지브와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인도 땅을 밟았던 소니아는 자신의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으며 라지브의 정계입문에 대해서도 이혼도 불사하겠다며 끝까지 말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984년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 성지인 황금사원에 대한 무력진압을 지시,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된 이후 여론이 라지브의 총리직 승계를 강력히 희망하는 쪽으로 쏠리자 그녀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남편의 정계진출을 그처럼 반대한 것은 간디 집안의 비극적인 역사 때문이었는데 결국 총리직을 승계한 라지브가 7년만에 암살되면서 그녀가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만다.

이때가 그녀의 나이 44세였다.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했던 소니아는 그러나 1998년 국민회의당이 힌두 민족주의 연합세력에 처참하게 패배하자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간디가(家)의 일원이 돼 있었던 그녀가 간디 가문의 분신격인 국민회의당의 공중분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 정계에 데뷔하자마자 힌디어 공부에 매진했던 그녀는 언제나 인도 전통의상인사리를 걸치고 다녔으며 지난해 4-5월의 총선에서는 농촌지역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 면서 결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총리 취임이 유력시됐던 그녀는 그러나 야당이 국적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자`내면의 목소리'에 따르겠다며 아무 미련없이 총리직을 버렸으며, 이때 인도 언론은그녀에게 `성녀(Saint)'라는 찬사를 바쳤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총리 지명권과 함께 집권연정의 의장 자리까지 차지함으로써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인도 정계의 진정한 실력자 자리를 지켰다.

포브스지는 간디 여사의 남편이자 전 총리였던 라지브 간디의 60회 생일이었던지난해 8월20일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00인'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지명자 등에 이어 3위에 올려 놓았다.

한편 인디아 투데이는 지난 5월 총선에서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승리를일궈 내고서도 총리직을 과감하게 팽개쳤던 간디 여사가 `입신의 경지'에 이른 정치력으로 현재 어느 나라보다도 변동성이 강한 인도 정계를 규정하는 가장 영향력있는인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뉴델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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